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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 무렵에 할 일

입력
2018.12.2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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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과 사연이 어떻든 겨울은 온다. 찬바람이 불고 성탄절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대하며 착한 일을 하려 애쓴다. 아무리 감정이 무딘 어른이라도 이 무렵엔 언뜻 얼굴에 미소를 짓는 걸 피하지 않는다. 이 기간은 다른 계절보다도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시기인 듯하다. 모두들 힘든 때라 하더라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요즈음엔 거리에서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고 하지만, 유튜브 등 다른 방법으로 쉽게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식사를 준비하거나 책을 읽을 때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집안을 연말연시의 들뜬 공기로 채울 수 있다. 아주 어색하지 않다면, 빙 크로스비 등 오래된 가수의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는 것도 좋다. 부드러운 음색의 캐럴을 들으며 여유 시간을 보내는 건 이 무렵 즐길 수 있는 경험이다. 이런 캐럴은 가족 또는 친구들과의 추억,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는 기원 등을 이끄는 계기가 된다. 연말연시엔 따뜻한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무렵엔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주는 휴식을 즐기는 것도 좋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교회에 가는 것도 좋고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는 것도 좋으며,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좋다. 언론보도를 보면 여유가 있는 가정은 외국 휴양지나 호텔에서 쉰다고 하는데, 굳이 그런 계획을 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 시기를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를 잔뜩 사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수다를 떠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연말마다 각 방송사에서 하는 가요제, 방송제 등 여러 시상식을 보며 한 해 동안 듣고 본 노래와 프로그램을 되새기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옆 사람과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더 안정된다.

길을 걷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것도 이 무렵에만 할 수 있다. 추위에 잠깐 멈춰서는 게 힘들 수 있지만, 적은 돈이나마 냄비에 넣고 다시 걸어갈 때 자신이 조금 더 행복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피할 이유는 없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는 냉정해지는 걸 연습하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할 때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돈을 기부하는 것 역시 우리가 익숙해져야 하는 삶의 습관이다. 타인을 돕고 그 행동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우리는 공동체적 존재로 남을 수 있다.

이 무렵엔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리를 사서 다음 해의 계획을 적고 새로운 약속을 정한다. 휴대폰을 쓰면 편하게 일정을 정리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최근 들어 종이로 만들어진 다이어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이어리에 일정을 적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자판으로 쳐서 입력하는 것과 이것을 손으로 이어 쓰는 건 조금 다른 경험이다. 앞의 것이 정보의 저장이라면, 뒤의 것 즉 필기는 시각적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손으로 글씨를 씀으로써 우리는 그 일을 상상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다이어리를 사서 다음 해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은 그 만큼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속도에 지쳐 있다는 걸 드러낸다.

연말연시가 다가와도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굳이 불행해지거나 냉정해지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을 하나씩 하며 따뜻한 마음과 여유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다가올 2019년에 무엇이 닥치든 ‘지금’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자격 정도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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