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유기업 운용과 관련해 민영화 과정으로 여겨지는 혼합소유제 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국유기업 육성책을 대표적인 시장경쟁 왜곡 사례로 꼽는 상황에서 유화적인 대미 메시지로도 읽힌다. 다만 중국 체제의 특성상 공산당 영도력을 전제한 것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란 비판도 나온다.
2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현재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중앙국유기업의 총 자산 54조5,000억위안(8,888조5,700억원) 중 상장사에 편입된 자산의 비율은 65%였다. 특히 통신ㆍ건축ㆍ부동산ㆍ도소매 등 시장 경쟁이 치열한 4개 분야에선 혼합소유제 자산 비율이 72~87%에 달했다. 통신은 “국유기업 개혁의 중요한 돌파구인 혼합소유제 개혁은 올해에도 심층적으로 추진됐다”고 평가한 뒤 “국유자본과 각종 소유제 자본의 공동발전을 실현할 혼합소유제 개혁은 앞으로도 더욱 체계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2014년부터 도입한 혼합소유제는 국가가 소유한 지분을 줄이고 민간 자본을 늘리는 민영화 과정의 일환이다. 무책임하고 방만한 운영으로 적자에 시달리는 국유기업에 시장 경쟁 원리와 민간의 효율성ㆍ창의성을 접목시키겠다는 것이다. 혼합소유제를 도입하는 방식은 주식시장 상장, 전략적 투자자 유치, 민간자본과 합작사 신설, 펀드 투자 등 다양하다. 2014년 2월 중국 최대 기업인 중국석유화학(시노펙)을 시작으로 항공기 제작사인 중항공업, 자원개발 업체인 중국황금, 식량ㆍ식품기업인 중량그룹 등이 차례로 혼합소유제 개혁에 착수했다.
중국이 본격적인 미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관영매체를 통해 혼합소유제 개혁의 성과를 과시한 건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그간 국유기업에 인적ㆍ물적 자원을 집중하고 독점적 권리를 보장하는 중국의 국유기업 육성책을 줄곧 비난해왔다. 앞서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직후인 지난 9월과 11월에도 두 차례 국유기업 내 이사회 권한 강화, 외국기업의 국유기업 주식 매입 허용 등의 개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래 국진민퇴(國進民退ㆍ국유기업은 전진하고 민영기업은 후퇴한다) 논란에서 보듯 국유기업 개혁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많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혼합소유제를 확대하고는 있지만 국유기업은 물론 민영ㆍ합작기업에까지 공산당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업 운용에서 당 위원회의 영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핵심은 중국 지도부가 ‘새(시장)는 새장(계획경제)에 가둬놓고 키워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느냐 여부”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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