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간되는교? 저녁에 밥 한끼 같이 합시다.” 24일 오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7년째 해마다 억대의 기부금을 내고 있는 대구의 ‘키다리아저씨’였다. 그날 오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희정 사무처장과 김용수 모금팀장 등은 약속한 대구 동구의 매운탕집에서 키다리아저씨를 기다렸다. 잠시 후 수수한 차림의 키다리아저씨 내외가 들어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키다리아저씨는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안에는 1억2,000여만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키다리아저씨는 말했다. “매달 1,000만원, 1년 열두 달 적금을 부어 이자까지 낸다는 게 나도 올해는 쉽지 않더라. 경기가 너무 나빠서. 하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만둘 수 없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달라. 함께 하면 우리 사회가 더 밝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곁에 앉아 있던 아내는 “우리 남편이 어릴 적 꼭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들을 돕는데 더 앞장서는 것 같다. 우리가 쓰고 싶은데 쓰지 않고 소중하게 모은 돈을 우리 주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잘 전달 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우리는 3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시누이와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직도 갖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다 가졌기에 나머지는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60대 대구시민으로만 알려진 키다리아저씨가 처음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한 것은 2012년 1월. 당시 익명으로 1억원을 쾌척했다. 그 해 12월 사무실 근처 국밥집에서 1억2,300만원을 시작으로 해마다 12월이면 1억2,000여만원을 기부했다. 절대 본인의 신상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렇게 지금까지 7년간 8회에 걸쳐 기부한 금액은 9억6,000여만원에 이른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개인기부 금액으로는 최고다.
키다리아저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과 함께 자리한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모금회 측도 키다리 아저씨가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사연을 그때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이희정 사무처장은 “기부자 뜻에 따라 대구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 더 따뜻한 대구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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