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그 후… 다시 얼어붙은 동계스포츠]
귀화선수 의욕적으로 영입했지만 폐막 후 절반만 한국 머물러
女바이애슬론 에바쿠모바 “처우 부당, 타국으로 가겠다” 선언
한국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일부 종목에 귀화선수와 이중국적 선수들을 의욕적으로 영입해 대회를 치렀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폐막 1년이 채 되지 않은 현재 이들 중 절반 정도만 한국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선수들은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선수 생활을 접어 사실상 태극마크를 포기했다. 열악한 저변, 적응 실패, 금전갈등 등 이들이 한국을 떠난 이유도 다양했다. 언 발에 오줌 누듯 했던 ‘1회성 영입’이었던 터라 선수들의 대거 이탈은 예견된 결과였다.
‘파란 눈의 한국 국가대표’의 이탈이 가장 두드러진 종목은 바이애슬론과 아이스하키다. 26일 대한바이에슬론연맹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영입한 러시아출신 외국인 대표선수 4명 가운데 현재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는 티모페이 랍신(30)과 프롤리나 안나(34)뿐이다. 알렉산드르 스타로두베츠(25)는 올림픽을 앞두고 허리 부상을 당해 지난해 말 일찌감치 고국으로 돌아갔고, 여자부 예카테리나 에바쿠모바(28)는 한국 생활 적응 실패를 이유로 대표팀에서 이탈했다.
재작년 12월 법무부로부터 특별귀화 허가를 받은 에바쿠모바는 평창올림픽 바이애슬론 여자 15㎞ 개인종목에 출전해 16위를 기록했다. 에바쿠모바는 대회 직후 한국을 떠나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연맹 등에 따르면 에바쿠모바는 대표팀 합류 초기부터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바쿠모바와 함께 온 개인코치와 대표팀 코칭스태프 사이 불협화음, 대표팀 전체 일정과 어긋난 선수 개인행동 같은 돌발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
에바쿠모바는 한국의 동의 없이 타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지만 연맹은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에바쿠모바는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에 낸 A4용지 2장 분량의 청원서를 보내 반박했다. △욕설 및 조롱 △수당미지급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게 선수 쪽 주장이다. 외국인 선수 개인 특성이나 자질 검증이 부족한 데다 선수단 관리 매뉴얼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던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아이스하키에서 남자 귀화선수(7명)들은 올해 안양 한라에서 은퇴한 브락 라던스키(35)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국내 실업팀에 뛰며 국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자 귀화선수 4명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로 돌아갔다.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국내 저변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대넬 임(25ㆍ임진경)이나 캐럴라인 박(29ㆍ박은정)은 선수생활보다 학업에 전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랜디 희수 그리핀(30), 마리사 브랜트(26ㆍ박윤정)도 이제 겨우 한 팀(수원시청)이 창단된 한국 실업무대에 몸담으면서 한국 대표 생활을 이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설명이다.
평창올림픽 피겨 아이스댄스에서 부문에서 민유라(23)와 함께 한복을 차려 입고 ‘홀로 아리랑’ 선율에 맞춰 감동의 연기를 펼쳤던 알렉산더 겜린(25)은 후원금 분배 등을 둘러싼 분쟁으로 지난 7월 사실상 대표팀을 떠났다. 한국과 노르웨이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던 크로스컨트리 스키 김마그너스(20)도 지난 여름 “한국 국가대표로 지내기엔 갈증이 크다”며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한국의 동계 종목들은 파란 눈의 국가대표들을 기획성으로 영입한 이후 부실한 관리로 선수도, 스토리도 다 잃고 말았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