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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레즈비언과 아마조네스

입력
2018.12.3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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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개봉한 영화 ‘아마조네스’의 포스터.
1973년 개봉한 영화 ‘아마조네스’의 포스터.

그리스 남동부 에게해에 있는 작은 섬 레스보스(Lesbos)는 ‘삼림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레즈비언(lesbian)은 레스보스에 사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언제부턴가 ‘동성애 여성’을 뜻하는 말로도 변질됐다. BC 6세기에 활약한 이 섬 출신의 여류 시인 사포가 남편과 사별한 후 소녀들을 이 섬에 모아 예술활동을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섬은 여성과 관련이 적지 않다. 섬은 BC 7~6세기에는 에게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나 1462~1913년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차 대전 후에 그리스령이 됐다.

□ 10년 전에는 이 섬 주민들이 그리스의 한 동성애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레스보스 섬 주민들이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동성애자들에게 빼앗기면서 정신적 도덕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레즈비언들이 대거 찾아오면서 활기를 찾아 ‘레즈비언의 성지’가 됐다. 특히 사포의 고향인 에레소스(Eresos) 마을은 레즈비언의 필수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고, 매년 레즈비언 축제까지 열린다.

□ 레스보스 섬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에도 등장한다. 조승연의 책 ‘비즈니스 인문학’에 따르면 그리스가 트로이에 쳐들어오자 트로이 인근 지역 전사들이 트로이를 돕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레스보스 섬을 다스리던 펜테실레이아 여왕과 그를 따르는 뛰어난 여궁수들도 있었다. 레스보스는 남자 노예들에게 무기를 주면 반항할 것을 우려해 무기 근처에는 가지 못하게 했고, 용감한 여궁수들에게 국방을 맡겼다. 여궁수들은 창이나 칼을 쓰기에는 남자에 비해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활쏘기로 무예를 단련했다.

□ 이들은 활시위를 귀 쪽으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가슴 쪽으로 당겼다. 그래서 활쏘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성인식 때는 오른쪽 유방을 도려냈다. ‘가슴(mazos)이 없다(a)’는 뜻으로 이들을 아마조스, 혹은 아마존으로 불렀다. 1973년 개봉한 테렌스 영 감독의 영화 ‘아마조네스’(아마존의 복수형)가 이들 이야기다. 펜테실레이아 여왕은 결국 그리스 최고 무장인 아킬레스의 칼에 쓰러진다. 남미 8개국에 걸쳐있는 열대 우림 이름이 아마존이 된 것도 레스보스의 여궁수들과 관련이 있다. 스페인 원정대가 아마존강 입구로 진입하면서 이 지역 원주민과 싸울 때 용감한 여전사들을 발견, 이들을 아마존이라고 불렀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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