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억 원을 사회에 기부했다가 140억 원의 세금(증여세) 폭탄을 맞고 세무당국에 맞서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승소를 이끌어 낸 황필상 박사가 31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전 재산을 기부하며 사회에 기부의 한 획을 그은 황 박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부의 의미를 잊지 않았다. 1994년 모교인 아주대(의료원)에 자신의 시신 기증 서약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황 박사의 시신 기증은 아주대의료원 개원 이후 서약 1호였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기부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떠나게 된 것은 자신의 가난했던 유년시절과 관련이 있다.
서울 청계천 빈민촌에서 나고 자라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낸 황 박사는 1973년 스물 여섯 살 되던 해에 아주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국비장학생으로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교수에서 물러난 황 박사는 1991년 생활정보신문(수원교차로)을 창업했다.
평소 자신처럼 고학하는 후배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황 박사는 2002년 현금 15억원과 수원교차로 주식 90%(10만8,000주) 등 215억원을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했다.
아주대는 ‘황필상 아주 장학재단’(현 구원장학재단)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며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연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수원세무서가 상속세법 및 증여세법에 의해 귀속분 증여세 140억4,193만원을 구원장학재단에 부과하면서 문제가 됐다. 황 박사 명의의 장학재단이니 만큼 특수관계에 있고,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봤던 것이다.
재단 측은 2009년 12월 행정소송을 냈고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패소했다.
항소심에서 패소 직후 황 박사는 이사직을 내려놨다.
재단의 한 직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항소심 과정에서 ‘여전히 이사장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황 박사께서 ‘외부에서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말과 함께 이사장 직을 내려놓으셨다”며 “이후 단 한 번도 재단에 대해 사소한 것 하나조차 관여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다행히 대법원 판결에서 황 박사가 승소했다. 수원세무서의 증여세 부과는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황 박사는 대법원 판결 직후 “진실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아주대에 주식을 기부했을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황 박사의 상황은 조금씩 악화돼 갔다. 재판 중 한 때 가산세가 불어 세금 총액이 225억원에 달했고, 아파트까지 압류당했다. 2년 전에는 림프종 암 진단까지 받아 극복했지만 쇠약해진 몸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폐렴 등이 겹치면서 끝내 세상을 등지게 된 것이다.
재단 관계자는 “자신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을 돕고 싶어 하셨는데 이렇게 떠나시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은 부인과 딸 2명이 있다. 발인은 2일 오전.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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