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세영 국립외교원장
회의감 커질수록 협상에 악영향… 김정은 답방ㆍ북미 회담 성사돼야
트럼프, 업적 향한 의지는 확고 北도 잇달아 관계 정상화 메시지
1965년 청구권 협정 틀로는 한계… 한일관계 2.0시대 준비하자
“시간을 1년만 되돌려 보자. 2017년 시점에서 2018년 한반도에 이 같은 극적 반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나. 새해도 마찬가지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을 맞고 있지만, 남북미 모두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같은 반전이 또 없으리란 법은 없는 셈이다.”
조세영(58) 국립외교원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어 이대로 협상이 좌초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무엇보다 북미협상이 교착 국면을 맞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회의감을 경계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회의론이 일단 확산되면 가속도가 붙고 실제 그 회의감이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에서다. 따라서 “이 회의감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빠른 시일 내 이뤄져야 할 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라고 조 원장은 강조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조 원장과의 인터뷰 나흘 뒤인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신년 서울 답방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정부 외교라인 내 대표적인 동북아 지역 전문가로 평가 받는 조 원장은 2012년 외교부 동북아국장을 역임하던 중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파동에 휘말리며 외교부를 떠났다. 이후 동서대 교수로 재직하다 5년 만인 지난해 국립외교원장으로 외교부에 돌아왔다.
5년의 공백이 있었던 만큼 신중한 정세 전망을 내놓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조 원장은 “새해 틀림없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겐 북핵 문제에서의 성과가 필요하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역시 여전하다는 근본적 환경이 변하지 않았다는 분석에서다.
북핵 문제 못지 않은 시급한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한일관계에 대해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토대로 한 한일관계 이후의 한일관계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65년 체제가 한일관계 1.0이었다면 양국 간 달라진 입장을 담아낼 수 있는 한일관계 2.0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조 원장의 조언이다.
_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1년 사이 벌어진 이 거대한 국면 전환을 어떻게 평가하나.
“1980년대 세계사적 흐름이었던 냉전 종식이 한반도에도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 진작에 있었어야 할 한반도 냉전 종식이 지금에서야 ‘한반도 비핵화’라는 의제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프로세스가 정상 레벨에서 이뤄졌다는 게 괄목할 성과다. 하나의 목표에 남북미 정상이 공감대를 두고 협의하고 움직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_거대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협상이 교착 상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북미가 각자의 주장만을 대외에 발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의 제재 완화를 희망하고 있다. 공이 상대 편에 있다는 것인데 어떤 협상이든 교착 국면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만 반복해서는 양국 간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견이 있다면 있는 대로 인정하고 양측이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게 중요하다. 이견이 있는 만큼 서로 이견을 듣고 교섭하면서 서로의 요망을 균형감 있게 잡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_북한의 비핵화가 먼저(미국)라는 입장과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가 먼저(북한)라는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균형감 있는 결론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비핵화가 먼저다, 제재 완화가 먼저다’ 식으로 미리 말하면 협상이 더 힘들어진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둔 북미 간 입장 차이 자체를 일단 대화 테이블에 올리는 게 중요하다. 일단 양측의 주장을 모두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하다 보면 양측 모두 양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협상 타결을 위한 여러 수가 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 입장을 동시에 담아낼 일종의 ‘패키지 협상 틀’을 만들어 갈 수 있고, 이것이 외교 협상의 본질 아니겠나. 더욱이 정상 레벨의 대화 추동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 국방부 장관이 ‘상대방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소통하는 게 중요하고, 소통은 높은 레벨에서 이뤄질수록 효과적’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북미 간 현재의 교착 국면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다.”
_북미 두 정상은 새해 다시 마주 앉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깊게 깔린 협상가다. 애당초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결단을 내렸을 때 북핵 문제를 풀어 업적으로 삼겠다는 확고한 목표 설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시간 싸움은 하지 않겠다’ 식의 최근 발언은 일종의 완급 조절이지 결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향하고 있다. 최근 방한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 허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 봐도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잘 드러나고 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매체들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들을 보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_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며 미국 조야와 국내에서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남북미 모두 그런 회의론에 휩쓸려선 안 된다. 회의론이 한번 고개를 들면 가속이 붙고 가속이 붙다 보면 회의론이 실제 협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회의론의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김 위원장의 조기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이다. 물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또 다른 회의론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거대한 프로세스 속에 있다. 당장 최종적이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대화를 통해 한 발 한 발 목표에 다가선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_북한의 종전선언 요구가 사라졌다. 대신 대북제재 완화를 내세웠다. 종전선언 이슈는 이대로 가라앉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장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가 잦아들었다고 해서 종전선언의 유효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핵화와 연동돼 있는 한반도 평화 구축 프로세스 속에서 종전선언은 여전히 유용하다. 아무리 정치적 선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도 종전선언이 원만하게 이뤄지면 이를 포석 삼아 평화협정 등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_남북 경협이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북한은 남측에 “미국 눈치 보지 말라”며 과감한 경협을 주문하고 있는데 새해 남북 경협은 얼마나 진척될까.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북한 입장에선 남측을 향해 서운한 의중을 내비칠 수도 있었을 테다. 반대로 비핵화 문제에서 큰 진전이 없는 환경에서 경협 추진을 위해 남측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남북 경협을 본격화하기 위해선 비핵화 문제에서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 남측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북한 역시 지금의 침묵을 깨고 미국과의 실질적 협상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_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강제징용 판결과 최근 초계기 레이더 논란까지 양국 관계가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50여 년간 한일관계는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틀 속에 있었다. 과거사 이슈들이 이 협정 틀 속에서 정리됐고, 한일관계도 이 협정의 틀 안에서 규정되고 작동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문제 등 더 이상 한일 간 이슈를 65년 체제의 틀로 담아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65년 협정 체제가 한일관계 1.0이라면 한일관계 2.0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_한일관계 2.0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일본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ㆍ안보 분야에서 공동의 전선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설정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북한 비핵화 이후엔 3개의 핵 보유국(미중러)과 3개의 핵 비보유국(남북일)이 동북아 지역에서 공존해야 한다. ‘3+3 체제’가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설계도를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 일본을 끌어들여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공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조세영 원장은
한중관계와 한일관계 그리고 통상 분야까지 두루 경험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주중대사관 공사참사관과 주일본대사관 공사참사관을 거쳐 2011년 8월 동북아국장을 역임했다. 이듬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체결 파문에 휘말리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동서대에서 국제학부 특임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9월 외교관 양성기관이자 학술기관인 국립외교원장으로 외교부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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