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딩
우리나라 포털에서 와인딩의 의미를 검색하면 대부분 펌에 관련된 정의가 나오거나, 일부 위키 사이트에서는 공도 폭주 정도로 표현되는게 전부이다. 권위 있는 어학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에 따르면 와인딩이란 구불구불 굽어진 코스를 의미로 검색된다. 그렇다면 와인딩은 그런 도로를 달리는 일련의 행위라고 정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길을 드라이버가 ‘즐기면서’ 달릴 수 있는 것이 가장 핵심 아닐까? 운전을 하면서 즐겁지 않고 공포심이 든다면 그건 드라이빙이나 와인딩이 아니라 폭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운전이 되려면 자동차가 달리다 코너 앞에서 감속하고(과진입 하지 않도록) 핸들을 돌려 턴인 동작에 들어가고, 다시 가속으로 이어지며 코터를 탈출해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드라이버가 올바르게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와인딩 로드에서 과속 역시 불필요한 요소이며 도로의 규정속도로만 달리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와인딩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추가로, 웹스터의 정의를 확장하여 생각해본다면 와인딩은 꼭 산길이어야 할 필요 역시 없을 것이다. 주차장 램프를 오르고 내릴 때, 고속도로 진출입 램프를 오르고 내릴 때, 교차로를 지날 때, 그 모든 도로들이 와인딩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공도는 나만 이용하는 도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도로라는 걸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12월의 어느날, EAT8을 새롭게 탑재한 푸조 308GT와 함께 와인딩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디젤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차량으로 ‘드라이빙을 논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 지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오히려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럼 어떤 차량으로 달려야 하는가?’ 혹은 ‘포뮬러 머신 타고 드라이빙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드라이빙인가?’라고 묻고 싶다.
물론 가솔린 차량 대비 앞뒤 무게 배분에서 손해가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구조적인 특성 때문에 드라이버가 운전 중에 불쾌할 일은 사실상 없다. 디젤 차로도 충분히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으며 덤으로 뛰어난 연비까지 얻을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겠는가?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푸조 308 GT EAT8은 와인딩 무대에서 기존 308 GT EAT6 사양 대비 확실한 개선을 이뤄냈다.
사실 푸조 308 GT EAT6 사양 또한 6단 변속기를 기반으로 와인딩에서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데 여기에 EAT8, 8단 변속기는 보다 빠릿빠릿한 출력 응답성까지 더해 집중해서 달리고 있노라면 디젤 엔진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릴 정도다.
특이점은 차체의 움직임이 6단 차량과 8단 차량이 살짝 다르다는 점인데, 8단 차량이 조금 더 예민하게 움직이는 편인 것 같다. 개인적인 선호도로 본다면 좀더 점잖게 움직이는 6단 모델 쪽으로 마음이 기울지만, 즉각적인 출력 응답성을 선호하는 드라이버라면 8단 모델을 선택하는 쪽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덤으로 8단 모델은 출력뿐 아니라 차체의 거동도 조금 더 기민하다.
이미 본인만의 달리기용 차가 따로 있는데, 데일리 카로 편안함과 해치백의 활용성, 디젤 엔진의 저렴한 연료비 등을 바탕으로 운전 재미를 잃지 않고 있는 차를 찾고 있는 중이라면 푸조 308을 추천한다.
재미를 더하는 EAT8
푸조 308 GT에 새롭게 적용된 8단 변속기는 굉장히 재미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몸으로 느껴지는 차량의 반응성의 변화인데, 기존 6단 모델이 조금 강한 가속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편이었다면 8단 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은 반응성과 출력을 모두 만족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고 RPM, 고속 영역에서 디젤 특유의 멍 때리는 현상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만족도가 크다. 변속 속도 역시 부담이 없고 특히 내리막 등의 저단 기어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변속기가 알아서 적정 기어를 선택해주는 것이 아주 똑똑해 보인다.
독특한 푸조만의 드라이빙
선배들이 얘기하는 20~30년 전의 푸조와는 다르겠지만 지금 현 세대의 다른 나라 차량들과 비교해봐도 확실히 푸조의 서스펜션은 다른 느낌이다.
스티어링을 조작해 턴-인이 개시되는 시점부터 예측하기 용이하도록 차체의 롤이 느껴지는 셋팅은 와인딩 로드 주행 시 압도적인 심리적 안정감과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도로 폭이 공도보다 훨씬 넓은 서킷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속도 영역을 떠나 드라이버에게 차를 조작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와인딩에서는 작정하고 찾아내지 않는 이상 이 차의 단점을 딱 꼽아 얘기하기 어렵다. 다만 코너 탈출 막판에 가솔린 엔진이 살짝 그리울 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차의 디젤 엔진이 안 좋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브랜드다. 어떻게 보면 골프와 유사해 보이는 익스테리어 실루엣을 시작으로 무척 평범해 보이는 블루HDi 2.0L 디젤 엔진, 실제로 앉아보면 꽤나 높은 드라이빙 포지션까지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시내 주행만 하게 된다면 이 차의 진가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겠으나, 무심코 들어선 와인딩 로드에서 이 차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의 쉐이드를 벗겨내 햇살, 달빛 등을 느끼며 달린다면 그 매력을 더욱 커진다.
평소 시내 주행에서는 디젤 특유의 엔진 소음 때문에 ‘이게 와인딩 들어가서 잘 달릴 수 있을까?’ 고민이 되다가도, 막상 주행이 시작되면 디젤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잊을 정도로 달려버린다. 그토록 껑충해 보이던 힙 포지션은 차에 롤링이 더해지며 탁월한 지지력으로 변모하고 시내에서는 약간 튀는 것처럼 느껴지던 승차감은 스티어링을 조작하며 부드럽게 넘어가는 하중으로 인해 잊혀진다.
그냥 화려하게 디자인만 해놓은 패션 아이템으로 보이던 핸들은 와인딩로드에서 스티어링 조작 시 최적의 파지감과 조작감을 느끼게 해준다. A-필러 트림과 루프 트림이 검은색으로 되어있어 마치 고성능 자동차를 타는 것 같은 만족감을 준다. 물론 엑셀을 전개하면서 들려오는 디젤엔진 특유의 소리 때문에 환상에 빠지는 시간은 극히 짧은 것이 아쉬움이다.
다만 푸조 308 GT에 마련된 스포츠 모드라는 ‘트릭’과 ‘특권’ 사이의 묘한 기능이 있다. 스포츠 모드가 활성활 되는 순간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만들어주는 가상의 사운드는 달리는 즐거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다만 늘어나는 사운드와 달리 출력은 그대로다.
와인딩의 가치를 높이는 존재, 푸조 308 GT EAT8
새로운 EAT8을 탑재한 푸조 308 GT와 와인딩을 즐긴 후 가격표를 찾아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신차 가격이 4천만원 약간 아래쪽이고, 6단 변속기지만 2만km 정도를 달린 인증 중고의 경우 2천 만원 중후반대로 포진되어 있다.
요즘처럼 전동화, 자율주행, 커넥티드카의 개념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실용적인 연비를 뽑아내면서도 달려야 할 순간에 ‘차를 드라이버가 조작하는 즐거움’을 주는 차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진지하게 마이너스 통장을 당겨야 할까?
한국일보 모클팀 – 이재환 기자 / 사진: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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