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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핵폐기ㆍ전략적 인내는 실패… 비핵화 과정 압축이 새해 전략 돼야

입력
2019.01.03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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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한반도 정세, 싱크탱크에 듣는다] <3>김연철 통일연구원장 

[저작권 한국일보]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시간은 절대 무한정하지 않다. 기회가 왔을 때 해결해야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김연철(55) 통일연구원장은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가진 인터뷰와 최근 후속 전화 통화에서 거듭 ‘시간’을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의 전기가 마련된 지난해도 정부는 6ㆍ25전쟁 종전선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등 북미 비핵화ㆍ평화구축 협상 동력을 불어넣기 위한 시간표를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 동력이 아닌 실질적인 비핵화 성과를 내야 할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그는 주목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6ㆍ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협상이 진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공약한 ‘트럼프 정부 1기 내’ 시한을 달성하려면 비핵화 과정을 압축해 속도를 내는 것이 새해의 핵심 전략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길게는 수십년이 걸린다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2, 3년 안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 같은 의문에 김 원장은 “과거 실패 사례를 답습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단호히 답했다. 김 원장은 그러면서 △선(先) 핵 폐기론 △전략적 인내 정책 △핵 신고 프레임 등 이른바 과거에 실패한 방식을 ‘3대 두 낫(Do not)’ 리스트로 꼽았다.

_비핵화 협상의 압축을 주장한다. 어떤 구상인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임기라는 목표 시한을 제시한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기회다. 하지만 지난 하반기 낭비한 시간을 극복하려면 비핵화 과정 자체를 압축할 수밖에 없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위한 논의를 상반기 내 시작한다면 2021년 트럼프 1기 정부 내 비핵화를 일정 수준까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비핵화 중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것이 핵시설 해체다. 제염 과정 등 방사능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물리적 시간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폐기 과정 중 우선 위협 해소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시설 불능화에 먼저 착수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구축을 통해 신뢰를 쌓고, 이후 핵무기ㆍ핵물질을 제3국으로 반출하면 된다. 현재 북미관계를 고려할 때 가장 빠르고 적합한 방식이다.”

_압축적 진전을 위해 관계국이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은.

“과거 20여년간 학습했던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선 핵 폐기론,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 핵 신고 프레임은 모두 실패한 접근법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적절한 환경 조성 없이는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미국 편’이라는 전략적 인내도 결국 북한 핵무장 수준만 올려뒀다. 북미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핵 신고를 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이 3가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할 수 있는 상응 조치의 그림을 제공하는 동시에 북미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제재 완화 등 융통성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김 원장을 비롯한 통일연구원 학자들은 앞서 지난해 12월 ‘2019 한반도 연례 정세전망’에서 “종전선언을 뛰어넘어 평화협정 협상 개시 시점을 앞당기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또 2020년 초 북한 비핵화가 50% 수준에 도달한다는 가정 하에 작성한 평화협정문 시안도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설익은 제안이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 역시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하기 위한 장치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일종의 비핵화 상응 조치로 평화협정 협상에 돌입해 신뢰를 구축해가자는 그림이다. 정작 우리 정부는 아직 평화협상을 준비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으나 오히려 북측이 호응을 해 왔다. 김 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제안하면서다.

_평화협정문 시안을 발표한 직후 평화협정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일었는데.

“오해가 많은데 우선 평화협정 체결은 평화체제 완성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싶다. 평화협정은 단계에 따라 여러 번 체결 가능하다. 평화체제 논의 입구, 중간, 출구 등 언제든 가능하다. 각 단계에 맞게 구체성이 강화되는 식이다. 특히 낮은 수준의 평화협정의 경우 종전선언과 큰 차이가 없다. 이번에 발표한 평화협정문 시안은 비핵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종 출구에 도달하기 전 촉진용 협정이 필요하다는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 중동 지역이나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을 보면 수 차례 각 단계에 맞는 평화협정 체결을 시도했다.”

_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말한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협상’도 같은 개념인가.

“북측은 신년사를 통해 큰 틀에서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지속해 나가면서 제도적으로는 평화협정 내지는 평화체제를 위한 사실상 4자회담을 제안했다. 비핵화 상응 조치로 두 축을 세운 셈이다. 평화협정 협상 자체는 1990년대부터 여러 시도가 있었다. 1996년 제주선언을 통한 평화체제 논의 4자회담 제안이 있었고, 1998년 제네바협정, 2005년 남북공동선언 때도 이 같은 다자협상이 추진됐다.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현 단계에선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 (북한을 유인할) 인센티브가 있다고 본다.”

_반대로 2018년에 해온 대로 이어가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대체로 북한의 선택이 한반도 정세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를 가능하게 했던 우리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평창 프로세스, 3월 대북특사 파견 등 북한을 이끌어내고 북미관계 교착 중 양측을 중재해 대화를 이어가게 한 노력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특히 5월 김계관ㆍ존 볼턴, 최선희ㆍ마이크 펜스 간 대립 국면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때를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고 싶다.”

_한국의 중재자론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건가.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연기 후 재개되기 전까지 양측은 서로의 방식을 고려 않은 채 자극했고 잘못된 해석도 빈번했다. 여기에 우리가 중재자로 나서 북한에게는 (이전 정부와) 달라진 트럼프 정부를 고려한 외교적 언어를 구사할 필요를, 미국에는 북한의 공격적 언어 뒤에 숨은 의도와 전략을 봐야 한다고 설득한 것이다. 12월 초 저도 워싱턴을 방문해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났다. 우리야 북한을 향해 일상적인 관심을 갖지만 미측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 보니 오인하는 점이 많아 북한 실상과 전략을 알려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아가 미국이 인정하는 우리 능력도 북한을 설득하는 데 있다고 본다. 북한과의 신뢰가 깨지면 미국도 우리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_올해도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이끌어가는 구도가 계속될까.

“둘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다 보면 ‘남북관계 과속’ 비판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는 이제 맞지 않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를 살펴보자. 여기선 남북과 유엔군사령부, 3자가 감시초소(GP) 철수, 한강하구 조사 등 세부적인 실무협의까지 거쳐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 남북이 앞서 가고 미국이 따라오게 하는 게 아니라, 과거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히던 군사 분야에서 남북미 3각 대화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_여전히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어떻게 보나.

“북미 교착 상황이 오면 북한의 진정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아지지만, 실제 북한 내부 작동방식을 보면 쉽게 되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북한도 후진기어를 넣기에는 너무 많이 나왔다. 단적인 예가 김 위원장이 가장 많이 현지지도 하고 있는 원산ㆍ갈마지구다. 이곳에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건설 중인데 과연 이게 국내 주민 대상이겠는가. 결국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정된 자원을 집중 투자한 것이다. 비핵화 협상 진전과 개방에 대한 북한 의지는 굉장히 강하다.”

_그럼에도 북미 고위급회담에 북측은 여전히 무응답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착 상황에서 북측은 ‘만남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를 기본적으로 견지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 대화 거부로 해석될 명분을 줄 뿐이다. 미국과의 협상이 성과를 낳기 어렵다고 보더라도 만남 자체를 피해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하다 해도 실무협상을 통한 준비과정은 필수다. 북한이 협상 진전을 원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신축성,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_올해 통일연구원 차원의 남북 학술교류 계획은.

“이종혁 북한 조국통일연구원장과 지난해 11월에 만나 학술교류를 추진하자는 데 공감했다. 올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을 통해 본격적인 실무 협의를 할 계획이다. 또한 남북 도시교류 활성화를 대비해 북한 도시에 관한 정보를 축적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개별 특성에 맞는 교류를 할 수 있게 지원하는 ‘북한도시포럼’을 같은 달 발족했다.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갖는 유럽 등 해외지역 연구소들을 위한 포럼도 개최할 계획이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김연철 원장은

국가 통일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통일연구원 제16대 원장으로 지난해 4월 취임했다. 청와대 안보실과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에서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참여정부 때인 2004~2006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내며 남북 회담 경험을 쌓았다. 2010년부터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를 맡았고 현재 휴직 상태다. ‘협상의 전략’, ‘냉전의 추억’, ‘70년의 대화’ 등 통일ㆍ남북관계 관련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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