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권력도구로 삼지 않고, 정부조직 개편 최소화 긍정적
구 정권과 지나친 차별화 혹평… 정경유착 없앴지만 일자리 미흡
국민과의 소통은 외면한 채 검찰 등 권력기관을 수족처럼 부리며 각종 블랙리스트로 시민사회와 국민을 겁박하고, 기업인과 독대해 사적 이득까지 챙기려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폐해에 몸서리친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에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절대 혼밥 하지 마라 △검찰을 수족으로 생각 마라 △전용기를 세워 두지 마라 △구 정권 색깔 지우기에 집착하지 마라 △청와대 몸집을 키우지 마라 △기업인 만나되 독대하지 마라 △정부조직 붙였다 뗐다 그만하라 △시장을 이기려 들지 마라 △포스코, KT는 쳐다보지도 마라 △블랙이든, 화이트든 명단을 만들지 마라 등 한국일보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제언한 10가지 ‘Do Not 리스트’(하지 말아야 할 일들)는 이런 요구의 집약본이었다.
그로부터 20개월이 흐른 2019년 1월, 과연 10가지 당부 사항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정치ㆍ경제학자 등 전문가에게 평가를 부탁하자 ‘Do Not 리스트’ 중 일부는 지켰으나 미흡했던 대목도 적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였다.
한반도를 전쟁 위협에서 구하고, 반복되는 정부 부처 조직개편을 줄이고, 검찰 등 권력기관을 청와대의 국정 운영 도구로 삼지 않은 점 등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국민 소통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고, 청와대 권력이 강화됐다는 비판 의견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 주도로 경제, 일자리 등을 챙겼으나 성과는 미미했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일 “문재인 정부 20개월 중 첫 1년은 상당히 준비된 정부라는 인상을 주게끔 일을 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경제 분야 등에서 준비된 게 약했던 것 같다”고 평가하며 전체적으로 B학점을 줬다. “경제는 F, 정치는 D”(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라는 신랄한 지적도 있었고, “몇십년 이어진 전쟁 위험 상황에서 탈출하는 등 큰 역할을 했고, 자영업자 등 직접 피해를 받는 분들에 대한 배려처럼 모자란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 경제 기조는 맞았다. 그래서 A를 주겠다”(임성학 서울시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견도 나왔다.
◇지구 네 바퀴 반 외교 활동은 긍정 평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항목은 ‘전용기를 세워 두지 마라’, ‘정부조직 붙였다 뗐다 그만 하라’였다.
제언 당시 대통령 전용기는 2016년 9월 이후 8개월째 운항이 없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며 정상 외교가 멈춘 측면도 있었지만, 북핵 문제에서 당사자가 아닌 주변국으로 밀려난 게 보다 근본 원인이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지난 한 해에만 18만㎞, 지구 네 바퀴 반을 돌 정도로 부지런히 외교에 나섰고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결실도 봤다. 임성학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위협이 줄었다는 것”이라고 호평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낭비도 이전 정부에 비하면 확 줄었다.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 승격 등 부처 조직 변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당초 공약대로 효율적인 정부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개편이었다”고 했다.
검찰을 공안통치 수단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의미의 ‘검찰을 수족으로 생각하지 마라’ 항목도 비교적 잘 지켜졌다는 평가다. 임 교수는 “과거처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직접 검찰을 통제하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고, 박 교수는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불가피하게 검찰 권력을 활용한 측면이 있으나, 검찰을 권력 수족처럼 다루거나 검찰과 유착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 소통 부족 논란에 ‘청와대 정부’ 혹평도
반면 가장 평가가 박했던 항목은 ‘청와대 몸집 키우지 마라’, ‘절대 혼밥 하지 마라’, ‘구 정권 색깔 지우기 집착하지 마라’ 등이었다. 청와대 몸집을 키우지 마라는 주문은 책임내각 원칙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역대 정권이 처음에는 ‘작은 청와대’를 지향한다 해놓고 서서히 조직을 비대화했고, 모든 정책을 청와대가 좌우하면서 내각은 힘이 빠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 ‘청와대 정부’라는 책까지 나올 정도로 청와대 권력 집중 현상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다. 이준한 교수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책임형 총리ㆍ장관제 정착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전 정권과의 지나친 차별화 금지 주문도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전 정권 시절 개소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유지하고, 이전 정권의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와 핀테크 육성을 이어간 부분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구 정권 색깔 지우기 정도가 아니라 과거 정권과 우파 보수 사람들까지 발본색원하려 난리”(황태순 정치평론가), “복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열심히 복수만 했다”(신율 교수) 등의 혹평이 적지 않았다.
독선ㆍ불통에 빠지지 않도록 ‘혼밥’을 피해야 한다는 주문 이행 평가는 엇갈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여야 대표와의 회동 등의 소통 노력은 긍정적인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남북관계, 외교 업무로 해외 출장이 잦고 밤늦게까지 일을 챙기면서 관저 등에서의 식사정치는 참여정부 시절에 비해 줄었다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혼밥 하지 마라는 건 소통화고 대화하라는 것인데 대통령이 야당과 접촉면을 더 넓혔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경제 성과엔 아쉬움 평가 많아
경제 관련 주문에 대한 평가 역시 온도차가 있었다. 정경유착 논란을 불렀던 기업인 독대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난 20개월 동안 책 잡힐 일은 하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인도 현지 공장 착공식 도중 면담 등도 곧바로 언론에 공개했다. 박상병 교수는 “오히려 다수 대기업과는 소원했을 만큼 정경유착 행태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경제 살리기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 문제를 야기했다는 지적에서 나온 ‘시장 이기려 들지 마라’는 주문도 “국가주의에 매몰됐다”(황 평론가), “일자리가 늘지 않았고, 임금과 부동산 문제 개입도 결과적으로 성공 못했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평가가 나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시장과 고용이 정부가 의도한 대로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10년, 20년은 못 내다봐도 1~2년에 대한 타임테이블이 있어야 맞춰갈 텐데 분절적으로 사고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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