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ㆍ소규모 중개상서 거래 활기
“유대인ㆍ수집가가 구입” 주장 불구
극우주의자 향수 자극할까 우려
지난해 11월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 소녀를 안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미국 경매 시장에서 1만 1,520달러(약 1,290만원)에 낙찰됐다. 2017년에는 히틀러가 사용하던 전화기가 24만3,000달러(약 2억 7,300만원)에 팔렸고 심지어 히틀러가 입던 속옷도 경매 시장에 나왔다. 강제수용소 의사로서 학살 대상 유대인을 선별한 요제프 멩겔레의 일기는 30만 달러(약 3억 3,700만원)에 팔렸다.
이처럼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 나치 인사들의 유물을 거래하는 경매 시장이 커지면서 나치에 대한 극우주의자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나치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나치 유물을 보존할 필요성은 있지만, 가뜩이나 인종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면 나치 추종자들의 상징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를 비롯해 이베이, 페이스북 등 대형 업체들은 나치 관련 물품의 거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나 소규모 중개상을 통한 거래는 더욱 활기를 띠는 추세다. 골동품 중개상인 테리 코벌씨는 워싱턴포스트(WP)에 “2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전쟁터에서 획득했던 나치 유품들이 본격적으로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며 “참전용사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유족들이 내다 파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호주에선 한 업체가 히틀러 초상화를 비롯해 나치 휘장과 철모 등 유물 70여개를 경매에 부쳐 유대인 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나치 유물이 히틀러의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들고 반유대주의를 부추긴다는 게 유대인 단체들의 우려다.
하지만 고가의 나치 유물을 사는 이들은 대부분 유대인이거나 역사 수집가들이라는 게 경매회사 측 주장이다. 역사적 보존 가치에 따라 거래가 이뤄질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나치 유물을 다루는 알렉산더 히스토리컬 옥션을 창립한 바질 파나고풀로스는 “내 고객들은 역사에 진지한 사람들이다. 스킨 헤드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없다”며 “스킨헤드는 이 유물의 역사적 가치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신의 아내도 유대인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에서 나치 유물을 판매한 마호니 측도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지만, 유물을 사간 이들은 네오 나치주의자들이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정치인들이다”며 “역사의 한 부분으로 수집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아직은 나치 유물이 수집가들이나 유대인들 사이에서 거래된다고 하더라도, 나치 유물 시장이 커질수록 네오 나치주의자들의 저변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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