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냉장고, 카메라, PC 등 첨단 가전제품이 공개되던 소비자가전전시회(CES)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눈으로 보고 직접 만질 수 있는 하드웨어 제품이 전시장 입구를 메우던 과거와 달리,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CES 2019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AI)이나 5세대(G) 이동통신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진행됐다.
하드웨어 제품 하나 없이 AI 기술만으로 CES를 장악한 대표 업체는 구글이다. 개막 첫날 구글 부스는 AI 비서 프로그램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활용한 스마트홈을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스마트홈을 채운 제품은 삼성 TV나 레노버 스마트 시계처럼 대부분 다른 기업이 생산한 기기들이다. 2시간여를 기다려 스마트홈 체험에 성공했다는 한 미국인 관람객은 “브랜드와 상관 없이 어떤 기기에서든 구글 어시스턴트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구글 관계자는 “현재 1,600개가 넘는 브랜드에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기기를 내놓고 있다”면서 “이달 말까지 구글 어시스턴트가 적용된 기기는 10억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도 첨단 AI 기술이 적용된 실시간 화상 통역 서비스를 선보였다. 구글 번역기는 먼저 음성을 인식한 뒤 이를 텍스트로 변형해 번역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알리바바의 서비스는 말을 하면 동시에 통역된 문장이 단어 단위로 휴대폰 화면에 뜬다. 상대의 말이 번역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부스에서 만난 알리바바 관계자는 “얼굴인식과 음성인식, 딥러닝을 통한 통역 결과 개선 등 알리바바만의 AI 기술이 집약된 서비스”라며 “앱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상 통역 서비스는 우리가 최초”라고 자랑했다.
전통 가전업체로 분류됐던 기업들도 하드웨어 대신 AI 기술을 강조했다. 소니는 TV 대신 가상현실(VR) 게임과 AI 사진보정 프로그램을 부스 전면에 배치했고, IBM은 ‘인간과 토론하는 AI’ 등 자사의 AI ‘왓슨’을 소개했다. 역대 CES에 모두 참가한 파나소닉도 가전제품 대신 딥러닝 기술과 이미지 센서 기술을 활용한 거울 등을 소개했다.
5G의 개념만 소개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5G 서비스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시연하는 곳도 늘었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845 모바일 플랫폼을 탑재한 기기로 관람객들이 확장현실(XR)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X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퀄컴 관계자는 “데이터 처리 속도가 독보적으로 빠른 5G 환경에서만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년 CES의 트렌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기조연설에도 올해는 AI와 5G가 강조됐다. 박일평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 한스 베스트버그 버라이즌 CEO 모두 AI와 5G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한 IT업계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AI가 녹아 들어간 만큼, 앞으로는 ‘얼마나 잘 만들었나’보다 ‘제품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놓고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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