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미국 - 아시아 넘는 글로벌 시장 헤쳐 가는 한류
2015년부터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매년 네 차례 열리는 한류 댄스 파티에는 400~500명의 미국 젋은이들이 모여 든다. 아시안계 뿐만 히스패닉, 백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방탄소년단(BTS), 엑소, 트와이스 등 K팝 가수들의 노래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 파티를 주최하는 K팝 동호회 ’BAEBAE’ 운영자인 미아 스타인리는 “몇 년 전 음악 DJ 활동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왜 K팝에 관심을 갖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젠 다르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에서 아주 흥미로운 음악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고, 한국어 노래를 듣는 데도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를 기반으로 한 ‘포에니원(4NE1) 엔터테인먼트’는 K팝 동호회가 기획사로 발전한 경우다. 한류 팬들이 뭉쳐 2016년 창립한 이 회사는 K팝 댄스콘테스트 등의 이벤트와 공연 기획 등을 진행한다. 미국 내 한류의 상업적 기반이 밑바닥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류의 대표 상품인 K팝의 미국 내 최근 위상은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1세대 한류 스타들이 숱한 도전에 나섰다가 부딪힌 미국 시장의 벽을 BTS는 단숨에 뛰어넘어 글로벌 스타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BTS가 지난해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하는 개가를 올린 것은 한 두 곡의 반짝 인기에 머무르지 않은 두터운 팬덤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K팝 가수가 빌보드차트 순위권만 들어도 화제에 올랐고 K팝 팬들조차 소수자의 위치였던 것을 감안하면 벼락 같은 도약이다.
주로 아시아계 미국인에 국한됐던 팬층 자체도 인종적 장벽을 넘어섰다. 가수 ‘비’가 2005년 뉴욕에서 공연을 가질 때만 해도 관객은 주로 아시아계였지만 최근 K팝 콘서트장은 여느 미국 가수 공연장과 다를 바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6년 10월 미국 내 한류 팬 2,6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서 팬층의 인종적 분포는 아시아계가 27.9%, 히스패닉 27%, 백인이 22.8%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조사에선 아시아계가 33.8%의 비중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해 2년의 기간만 따져도 빠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조사를 진행한 김철민 한국콘텐츠진흥원 워싱턴지사 소장은 “K팝 팬층이 전 인종 집단에 고르게 분포돼 보편적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캘리포니아 인디오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걸그룹 ‘블랙핑크’와 밴드 ‘혁오’가 초청돼 무대에 서게 된 것도 K팝에 대한 미국 주류 음악계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년 봄에 열리는 코첼라 페스티벌은 미국의 대표적 음악 축제로 K팝 아이돌 그룹이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다. 코첼라 창시자인 폴 토레토가 지난해 직접 한국을 찾아 블랙핑크를 초청했다고 YG엔터테인먼트는 설명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하위 문화의 하나로 여겨졌던 K팝이 말 그대로 미국 주류 문화에 다가서며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항해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도약은 국경을 넘는 팬들과의 밑바닥 소통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BTS가 데뷔 전부터 트위터와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한 것이 성공의 중요한 자산이었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K팝의 매력으로 꼽히는 중독성 강한 음악과 화려한 춤 역시 언어적 장벽을 넘어 세대적 공감을 끌어내는 요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장벽을 강조하며 반이민 정서를 비롯한 내셔널리즘에 불을 지피고 있는 상황에서도 K팝 후속 주자들이 젊은 세대의 공감을 획득하면 글로벌 시장 개척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K팝을 알 게 된 계기로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것이 ‘지인의 추천’(33.3%)’, 즉 팬들의 구전(口傳)이었다. 전통적 미디어인 뉴스는 고작 0.7%에 불과했다. 청취 경로는 유튜브가 64.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미국 주류 미디어와 정치가 어디로 가든, 팬들의 공감과 국경을 넘는 네트워크가 내셔널리즘의 파고를 넘어 K팝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라는 얘기다. 포에니원 엔터테인먼트의 채니어 브래들리 대표는 “BTS는 처음에는 미국 주류 미디어의 무관심 속에서도 팬덤의 힘으로 미국에 소개됐다”며 “음악 산업이 또 다른 K팝 밴드를 그저 미국 시장의 틈새로 밀어 넣으려고만 하면 아티스트로서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같은 세대들과 공명하면서 팬덤을 형성하는 테스트 시기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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