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빙상연대 “가해자 2명 더… 피해자 중 2명 증언ㆍ고발 준비”
“조재범 측근이 심석희에 합의 종용… 거부하자 왕따 당해”
심석희(22)말고도 성폭력 피해를 당한 빙상 선수가 더 있으며, 조재범 코치 외에 국가대표 지도자 출신 가해자가 2명 이상 더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빙상계 권력이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출신인 전명규(56) 한국체육대학 교수 한 사람에게 집중됐던 구조 탓에 피해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며 가해자들이 버젓이 연맹에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지낸 여준형(35)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시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2개월 여 전부터 빙상계의 성폭력 의혹을 접수해 사실 관계를 파악했다”며 “현재 5∼6건의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중 2명은 증언 또는 고발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중엔 현역 국가대표와 함께 미성년자도 포함됐으며, 전직 국가대표팀 코치 2명이 가해자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 대표는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있다”며 “(대한체육회 산하)신고 센터가 있어도 유명무실하다. 빙상연맹만 봐도 내부에서 모든 걸 쉬쉬하면서 덮으려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석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체대에서 훈련해왔고 맞았다는데, 이 사실을 빙상연맹 부회장 출신이자 2018 평창올림픽 부단장을 맡았던 전명규 교수가 몰랐다고 주장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며 “몰랐다면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젠더폭력안전연구센터장은 ”스포츠는 어렸을 때 폭력으로 시작해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인의 선수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대상자가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단 한 명밖에 없고 그 사람의 말에 의해 내 진학, 프로 진출, 국가대표 선발 등 모든 게 결정되는 이 구조 안에서 피해자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폭력이나 성폭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당초 젊은빙상인연대는 오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 선수가 직접 가해자 실명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피해 선수들이 부담을 느껴 회견 계획을 재검토 중이다. 반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앞두고 여자 대표팀 장비 담당 코치가 대표팀 합류 전 자신의 여제자 성추행 의혹으로 직무정지 받았지만 여전히 코치 생활을 하고 있는 등 가해 코치나 임원들이 죄의식 없이 연맹에 남아 있다는 것이 여 대표의 설명이다.
이미 빙상연맹은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점 감사 결과, 심석희의 폭행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기로 했던 날인 2018년 1월17일 심석희를 때린 조재범 코치의 폭행 사실을 숨기려고 심석희가 몸살 감기로 병원에 갔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
빙상연맹은 이후 피해자 심석희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했다. 가해자 조 전 코치는 측근을 통해 폭행 관련 합의를 심석희에게 요구했다. 다른 피해자들은 합의를 했지만 심석희는 끝까지 맞섰다. 조 전 코치의 측근은 파벌의 중심 한국체대 출신들로 집요하게 심석희의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를 혼자만 거부한 심석희는 이후 한국체대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가 빙상계에서 퍼졌다. 이는 또한 심석희가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작용했다.
심석희가 조 전 코치에게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했던 빙상인들도 막상 성폭행까지 이뤄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 대표팀 출신 한 지도자는 “폭행은 자주 있었고, 성추행까지는 간혹 들었지만 성폭행은 처음 듣는다”며 “도대체 왜 제자들한테 그러는지 심리를 모르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조 전 코치의 항소심 때 조 전 코치측 증인으로 출석했던 류재준 트레이너 역시도 “그 소식은 충격적이라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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