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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극단주의 사회 ‘한국’… 그 씨앗을 없앨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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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극단주의 사회 ‘한국’… 그 씨앗을 없앨 방법은 없을까

입력
2019.01.17 17:39
수정
2019.01.17 18:5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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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주차장 한쪽에서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대한적십자사의 의료지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6월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주차장 한쪽에서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대한적십자사의 의료지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종교적 근본주의자를 표현할 때나 등장했던 ‘극단주의’. ‘혐오 문화’를 타고 한국 사회를 휘젓더니 최근 몇 년 새 사방으로 뿌리내렸다. 도대체 왜. 사회심리학자인 김태형씨는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에서 그 답을 찾아 나선다.

우선 극단주의의 정의부터. 저자에 따르면,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광신’이란 뭘까. “합리적이고 비판적 판단이 안 되는 상황에서의 믿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믿음을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광신의 동력이다. 광신에 빠진 극단주의자는 그래서 ‘사실’이 아닌 ‘스스로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극단주의가 발현되는 대표적 사례가 혐오다.

극단주의는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신체적 안녕, 집단의 가치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극단으로 내몬다. 지난해 제주에 도착한 예멘 출신 난민은 정말로 잠재적 범죄자들일까. 그들을 수용하면 제주는 무시무시한 범죄의 섬이 될까. 그렇다고 속단한 사람들이 제시한 실체적 근거는 없다. 해소되지 못한 두려움이 차곡차곡 쌓였고,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을 내쫓고 보겠다는 ‘극단의’ 이기주의로 터져 나왔다.

지배 계급은 극단주의를 두려워할까. 실은 이용한다. 극단주의를 부추겨 민중의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돌린다. 계급투쟁을 막기 위해서다. 지배계급은 ‘희생양 만들기’로 통치 위기를 넘기곤 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악마화’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워마드 사이트에 올라온 '성체 훼손' 사진. 워마드 캡처
지난해 워마드 사이트에 올라온 '성체 훼손' 사진. 워마드 캡처

한국의 극단주의는 어느 정도일까. 저자에 따르면, 한국은 “전형적인 극단주의 사회”다. ‘10점 만점에 3.79점.’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매긴 우리 사회의 포용성 점수다.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에서 비롯한 전통적 극단주의부터 일간베스트(일베) 워마드 같은 신종 극단주의까지, 사례는 곳곳에 널려있다.

해법이 과연 있을까. “오직 사회적 차원의 근본적인 대수술만이 극단주의를 근절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민하며 국가 차원의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 (…) 극단주의라는 괴물이 우리를 집어삼키기 전에 씨앗을 없애자.” 저자의 제안이다. 어쩌면 너무 크고 뻔한 말이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시원한 해법이 있을까 싶다. 당연한 것을 놓치고 놓친 끝에 마주한 것이 극단주의라는 점을 되새긴다면, ‘당연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에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김태형 지음

을유문화사 발행ㆍ287쪽ㆍ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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