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겨울 날씨가 지속되면서 주택가 화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자 4명중 1명이 침실에서 발생했다. 화재 전문가들은 가정 내 일상적으로 구비되는 침대매트리스의 높은 가연성 때문에 ‘숨은 방화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상 생활 공간에서 주요한 요소이지만 화재 무방비나 다름없는 관리사각지대에 놓인 매트리스를 둘러싼 국내 규제 현황과 해외 사례, 방지 대책 및 전문가 의견 등을 3차례에 걸쳐 싣는다.
지난해 2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 3층 다가구주택 2층에서 남모(45)씨가 침대매트리스 위에서 보조 배터리를 충전하던 중 연기가 새어 나오면서 불이 났다. 불은 삽시간에 침대매트리스로 번졌고 화염과 유독가스가 곧 집 안을 뒤덮었다. 남씨는 7세 된 아이를 데리고 황급히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위층에 살던 오모(86) 할머니는 대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후 숨졌다. 침대 매트리스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화염과 유독가스가 더욱 확산돼 인명피해를 낸 대표적 사례다.
23일 소방청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2008년부터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총44만1,029건, 사망자는 총 3,247명이었다. 이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곳은 가정의 침실(76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망자 대비 24%로 4명 중 1명 꼴이다. 거실에 비해 약 1.6배, 주방에 비해서는 약 3.5배에 해당한다.
사망자 중 침실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24%에 달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화재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주택이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일차적인 이유에다 실내 적재 가연물인 침대 매트리스의 높은 화재 위험성을 꼽는다.
2013년 한국방재학회논문집에 실린 ‘주거시설의 가연물 연소 DB 구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소파 △책상 △의자 △서랍장 △침대매트리스 △TV를 대상으로 실시한 화재시험 결과 화재 진행 속도를 나타내는 화재성장률이 침대매트리스가 소파의 2.1배, 서랍장의 9.6배, 의자의 26.8배, 책상의 230.8배, TV의 490.8배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10월 한국화재보험협회부설 방재시험연구원이 한국 시몬스와 공동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매트리스를 대상으로 실물 규모 환경에서 버너에 의한 화재 시험을 진행한 결과, 난연 매트리스를 제외한 △라텍스 △스프링 △메모리폼 매트리스에서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했다. 불을 붙인 지 약 4~7분 사이에 매트리스 전체가 급격하게 화염에 휩싸이며 활활 타올랐다.
침대매트리스는 가구당 0.7대 꼴로 비치된 생활 필수재에 가까운 가구다. 하지만 △큰 부피 △겉감이 섬유로 싸인 높은 가연성 △다량의 유독가스 배출 등으로 화재 시 매우 위험한 가구이기도 하다. 이처럼 화재 확산의 주요 매개체인 침대 매트리스의 화재 방어력을 높이면 재실자의 피난시간 확보는 물론 화재 현장에 진입한 소방관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간 침대 매트리스의 화재 안전 관리에 대한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오고 있으나 관련 규제는 미흡하다. 현행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서는 아파트를 제외한 11층 이상의 건축물, 다중이용업소, 의료시설 등에서 사용하는 소파, 커튼, 카펫 등에 대해 방염(防炎) 성능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국내 침대매트리스의 화재안전 성능 평가 방법이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다. 침대매트리스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규제인 ‘안전기준준수대상 생활용품’ 등급으로 분류돼 안전성 검증을 위한 제품시험 의무 없이도 제품의 제조 및 수입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침대매트리스의 화재시험 방법은 국가기술표준원의 안전기준에 따른 일명 ‘담뱃불 시험법(KS G 4300)’으로 가연성을 테스트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침대매트리스는 시판용 매트리스의 약 10분의 1 시험체에 약 7㎝ 길이의 담배로 불을 붙여 발화 여부와 시료 손상 범위를 단순히 육안으로 확인하는 ‘담뱃불 시험’을 진행하기만 하면 끝이다.
신이철 방재시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매트리스 특성상 인화점이 낮아 화재 시 화염 확산의 매개체가 되며 '플래시오버'(화재가 급격히 확산되는 시점)의 촉발제로 작용한다”며 "침대매트리스는 안전 규제가 거의 전무해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난연 소재 가구 의무화는 주택 거주자들의 가구 선택권을 제한하는 측면이 법제화의 부정적인 요인”이라며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난연 가구를 구입해 화재 예방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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