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지구촌은 선거 중] 현직 대통령과 전직 총리, 유명 코미디언의 ‘예측불허 3파전’

입력
2019.02.07 14:50
수정
2019.02.18 18:21
17면
0 0

우크라이나 3월 31일 대선… 러시아 변수 작용할지도 주목

지난달 2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야권 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가운데) 전 총리가 오는 3월 31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연설하고 있다. 티모셴코는 최근 3년간 실시된 대부분의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해 왔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야권 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가운데) 전 총리가 오는 3월 31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연설하고 있다. 티모셴코는 최근 3년간 실시된 대부분의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해 왔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5일 크림반도 일대를 일촉즉발의 상태로 빠트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나포 사태’. 그때부터 2개월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확한 발생 경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케르치해협 통과를 사전 통보했는데도 러시아군이 공격했다”며 반발했으나, 러시아 측은 “그런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맞받아쳤다. 크림반도와 주변 해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 온 두 나라가 이런 입장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 상반된 양측 주장의 진위에 대한 객관적 검증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가 있었는지 등은 끝내 밝혀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미뤄질 수도 있다’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오는 3월 31일 대선이 예정대로 치러진다는 사실이다. 지금 보면 ‘대선 연기설’은 지나친 기우였지만, 사태 발생 직후엔 꽤 설득력 있는 추정이었다.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가 그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력을 사용한 ‘중대 사건’이었던 데다, 페트로 포로셴코(54)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곧바로 러시아 접경 지역 10곳에 계엄령까지 선포했던 탓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군사적 충돌은 없었고, 포로셴코 대통령도 한 달 후 계엄령을 해제했다. 대선 연기가 불가피할 정도의 사유는 존재하지 않게 됐고, 우크라이나는 새해를 하루 앞둔 작년 12월 31일부터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돌입했다.

야권 지도자도, 현직 대통령도 ‘반러’ 강조

이번 대선전에 뛰어든 후보 30명 가운데 ‘빅3’는 야권 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59) 전 총리와 포로셴코 현 대통령,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정상급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다. 정치 경력으로 따지면 ‘전통의 강호’ 두 명과 ‘풋내기’ 한 명이 벌이는 3파전인 셈이다.

페트로 포로셴코(맨 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통일의 날’ 100주년 기념식 도중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19년 1월 22일 서부와 중앙 우크라이나 민족 공화국을 재통일하는 법률을 선포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페트로 포로셴코(맨 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통일의 날’ 100주년 기념식 도중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19년 1월 22일 서부와 중앙 우크라이나 민족 공화국을 재통일하는 법률을 선포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선두 주자는 2004년 대통령 부정선거에 대한 대규모의 항의 시위, 이른바 ‘오렌지 혁명’을 이끌었던 티모셴코 전 총리다. 친(親)서방 성향으로 ‘의회 민주주의 강화’를 내세우는 그는 2016년 이후 거의 모든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지난달 27~29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2위(젤렌스키, 17.6%)보다 2.6%포인트 앞선 20.2%를 기록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정치인인 셈이다. 지난달 22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그는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는 물론,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통제를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反)러 노선’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지난달 29일 재선 도전을 선언한 포로셴코 현 대통령은 “군대! 언어! 신앙! 우리는 우크라이나”라는 선거 구호를 주창하고 있다. 친러 반군과의 전투(군대), 옛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 확립(언어),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신앙) 등을 강조하면서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건 그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문제는 5년 전 대선에서 무려 54.7%의 득표율로 티모셴코 전 총리(12.8%)에 압승을 거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은 ‘너무 인기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고작 11.9%에 그쳤다. 두 달여 전 함정 나포 사태와 관련, 러시아 측이 “안보 불안을 조성해 재선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 때까지 대선을 연기하려고 의도적으로 먼저 도발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 경제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현직 대통령의 이 같은 지지율 추락에 대해 “유권자들이 가장 원했던 한 가지는 ‘부패 해결’이었는데, 집권 5년 동안 전혀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 우크라이나 유명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가 출연했던 인기 TV 드라마 ‘인민의 봉사자’의 한 장면. 평범한 교사에서 정직한 대통령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실제 대선 여론 조사에서도 1, 2위까지 올라서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키예프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12월 31일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 우크라이나 유명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가 출연했던 인기 TV 드라마 ‘인민의 봉사자’의 한 장면. 평범한 교사에서 정직한 대통령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실제 대선 여론 조사에서도 1, 2위까지 올라서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키예프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정치판 물갈이”… 코미디언 출신 후보 돌풍

지난달까지만 해도 결국엔 이들 두 사람이 결선 투표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현재 분위기는 다르다. 톱클래스 코미디언에서 이제 막 정치인으로 변신한 젤렌스키의 기세가 무섭기 때문이다. 평범한 학교 교사가 ‘뇌물 안 받는 정직한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인기 TV드라마 ‘인민의 봉사자’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미 포로셴코 대통령의 지지율은 훌쩍 추월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티모셴코 전 총리마저 넘어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그와의 양자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의 무기는 기존 정치인들한테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새로운 얼굴’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판에서 활동한 적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모집 동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참여 신청이 폭주했고, 그 인원은 무려 19만 8,000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저널리스트인 미콜라 보로비오프는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보낸 기고문에서 “젤렌스키는 2차 투표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미 우크라이나 정치의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고 전했다.

이번 대선 결과는 현재로선 ‘완전히 예측불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브라이언 메포드 애틀랜틱카운슬 비상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의 여론조사는 ‘물주’가 누구냐에 따라 적게는 3%, 많게는 5~7%까지 조작된다”면서 “객관적 지표라기보단 여론에 영향을 미치도록 특정한 ‘서사’를 만드는 도구”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티모셴코 전 총리의 20%대 지지율은 ‘5명 중 4명이 다른 후보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감추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함정 나포 사태에서 보듯, 러시아가 어떤 형태로든 돌발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지난 20년간 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한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우크라이나 혁명의 유산은 3월 대선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3월 31일 우크라이나 대선 주요 후보 3인
3월 31일 우크라이나 대선 주요 후보 3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