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커제 9단, ‘머리꼬기’ 버릇은 전매특허
나현 9단, 손톱 ‘물어뜯기’ 습관도 잘 알려져
조치훈 9단, 대국 도중 수시로 자신의 뺨 때리고 머리 쥐어박기도
반상(盤上)에서의 전투는 언제나 처절하다. 백돌과 흑돌을 내세워 벌이는 살벌한 전투 뒤엔 장수들의 두뇌 싸움 또한 치열하다. 프로바둑 기사들이 대국 도중 생사의 갈림길에서 초조함이나 불안감 등을 내비치는 것도 이런 승부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진검 승부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기사들의 버릇들을 살펴봤다.
세계 바둑계 1인자인 중국 커제(22) 9단은 요란한 감정 표시 기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대국시 ‘머리꼬기’는 커제 9단의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하다. 중요한 승부처나 끝내기에 접어들면 여지없이 손은 머리 위로 올라가 있다. 유리하거나 불리할 때 머리를 꼬는 방향도 각각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위기 상황에선 머리를 통째로 쥐어뜯는 것도 커제 9단의 독특한 버릇이다. 이 때문에 대국 종료시, 바둑판 주변엔 빠진 커제 9단의 머리카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제 9단은 안국현(27) 9단과 벌였던 ‘2018 삼성화재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국에선 이런 산만한 모습으로 심판에게 주의도 받았다.
‘머리꼬기’에 관한 한 한국의 김명훈(22) 6단도 커제 9단 못지 않다. 김명훈 6단 역시 대국이 불리하게 전개되면 쉴새 없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꼰다.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바둑TV 해설위원을 지낸 유창혁 9단은 “국가대표팀에서 대국을 벌이면서 머리 꼬는 버릇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주의를 줬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게으른 천재’기사로 소문난 나현(24) 9단의 습관은 특이하다. 나현 9단은 방송대국에서도 대국 도중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측하지 못한 수에 당황하거나 상대방의 착수가 늦어질 때는 나현 9단의 손은 입으로 향해 있을 때가 많다. 비위생적이란 지적도 있지만 나현 9단의 손톱 물어뜯기 습관은 바둑계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학적인 버릇이라면 ‘불멸의 기사’로 각인된 조치훈(63) 9단이 대표주자다. 조치훈 9단은 대국 도중 실수가 나왔을 땐 스스로 자신의 뺨이나 머리를 가차없이 가격한다. 가볍게 두드리는 정도가 아니다. 조치훈 9단의 자학적인 가격으로 생기는 소리는 상대방이 놀랄 만큼, 큰 소리까지 동반된다. 머리를 쥐어뜯는 건 기본이다. 1968년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인 11세9개월에 입단한 조치훈 9단은 아직까지 현역으로 왕성하게 대국을 이어가고 있다.
대국 도중 나오는 버릇이라면 이세돌(36) 9단 역시 빠질 순 없다. 주로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판짜기에 들어가면 이세돌 9단은 주먹을 쥔 채 입술에 문지르고 엄지와 검지 사이를 긁어댄다. 이어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바둑돌통이나 테이블을 가볍게 치는 동작으로 마무리한 다음 착수한다. 바둑계에선 이를 두고 ‘이세돌 9단의 ‘3종 세트’로 부른다. 아울러 전투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자신만의 ‘묘수’를 착점한 다음, ‘이 수를 어떻게 받아내시겠습니까’란 의미가 담긴 듯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빠르게 흘겨 보는 것도 이세돌 9단의 전매특허다.
지금은 개선됐지만 대국 도중 나오는 비매너 분야에선 중국의 탕웨이싱(26) 9단이 단연 세계 1인자였다. 대국 도중, 의자에 반쯤 드러눕는 건 예삿일이었다. 부채 펴기와 접기를 반복하면서 소리로 상대방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도 탕웨이싱 9단에겐 일반적이었다. 서봉수(66) 9단과 벌인 ‘2017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32강전에선 부채 소리로 심판진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 탕웨이싱 9단은 자국내 선수들조차 대국을 기피하는 기사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경기 시간이 길었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제한 시간도 단축되면서 대국 도중 기사들의 버릇은 줄어드는 추세”라며 “최근 각종 국내·외 대회 규정도 상대방의 경기력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행동들은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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