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야, 너무 힘들면 이제 그만 가도 돼.”
엄마가 울면서 반려견 해리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해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종종 발작하면서도 짧은 발작이 지나면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날은 발작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고통스러워하는 해리에게 이제 그만 가도 된다고 말했고, 나는 울고만 있다가 해리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진정제를 맞고 해리는 떠났다. 해리 나이 고작 3살. 대학병원에서도 발작의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아직 어리니 잘 관리하면 될 거라는 희망으로 해리를 붙잡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좀 더 일찍 안락사를 결정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함께 살던 반려동물을 보낼 때마다 안락사 기준을 점검한다. 너무 늦지 않기를, 의미 없는 고통을 연장하지 않기를.
라틴어에서 온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의 뜻은 ‘좋은 죽음’이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죽음. 동물의 안락사는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동물을 대신해서 반려인이 결정해야 해서 그 앞에서 늘 머뭇거린다.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반려인의 마지막 책임이기에 이성적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한다. 심장이 찢기는 고통의 결정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을 안락사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임의로 동물을 죽여서 처분하는 것이니까 살처분殺處分이라고 써야 맞다. 또한 그곳에 들어간 동물의 약 50퍼센트가 살처분과 자연사로 죽어 나가는데 보호소가 맞을까? 당사자인 동물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지자체 캣맘 모임 대표를 하던 시절 누군가 소방서나 동사무소로 새끼고양이를 잔뜩 안고 와서 ‘보호소’에 보내 달라고 하고 사라지면 나에게 연락이 왔다. 새끼고양이가 보호소에 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선의를 갖고 새끼고양이를 구조했다고 뿌듯했겠지만, 어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일 수 있고, 현재의 보호소는 그의 생각처럼 동물을 보호해 주는 곳이 아니다. 동물 중 반이 죽어서 그곳을 나간다면 보호소가 아니라 계류장 정도가 적당한 단어일 것이다.
약자는 자신의 언어를 갖기 어렵다. 적합한 단어를 두고 다투는 싸움에서 언제나 동물은 인간에게 진다. 동물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데 인간은 자기 마음 편하자고 보호소에서 안락사한다고 표현한다. 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가 되고, 무책임한 인간에게 버려져 산으로 내몰린 개는 들개가 된다. 인간이 버린 후 개는 같은 개인데 계속 명칭이 바뀐다. 반려견에서 유기견으로, 유기견에서 위협적인 들개로. 임산부가 감염되면 기형아를 낳는다는 톡소플라스마는 우리나라에서 임상 사례가 없음에도 ‘고양이 기생충’이라는 잘못된 제목을 달고 공포를 부추기는 뉴스가 된다. 차별과 혐오가 가득 찬 승자의 왜곡된 언어이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의 저자는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의 판매원이다. 그는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가진 자가 하는 말에 숨죽이고 순종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고백한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언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의 글을 읽은 후 나 또한 노숙인을 대상화했음을 반성했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에만 집착한다는, 오늘과 내일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기적일 수도 있다는, 미워했던 누군가도 그 또한 아프니까 이해하기로 했다는 저자가 자신의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노숙인이 아닌 한 인간의 삶을 알게 됐다.
인간은 동물의 언어에 귀 기울일 의지가 없다. 그래서 동물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이들이 분발해서 그들의 삶을 알려야 한다. 언젠가 청소년 독자에게 연락이 왔다. 개, 고양이 입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더니 선생님이 틀렸다고 지적했단다. 동물에게는 입양이 아니라 입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나도 똑같은 반응을 접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으니 동물에게도 입양이라는 단어를 쓰면 인간 입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했다. 생명의 가치를 인간과 동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덜 떨어진 생각이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임상철,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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