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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년] ‘性인지 감수성’ 새 화두로… 남성 중심 법조계도 바뀌었다

입력
2019.01.28 18:10
수정
2019.01.28 20: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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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태근 前국장 법정 구속 등 미투 사건에 강도 높은 판결 

 ‘피해자다움’을 부정하고 피해자 진술을 폭넓게 인정 

서지현 검사가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 1심 유죄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서지현 검사가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 1심 유죄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미투(#Me Too) 1년. ‘성인지 감수성’이 법조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법조계야말로 남다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법원은 미투 사건에 강도 높은 판결을 내놓고 있다. 지난 23일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사건에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서지현 검사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자세히 검토한 뒤 사실로 인정했고, 구체적 지시 없이도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하는 진일보한 판단을 내렸다. 지난해 9월에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사건에서 미투 사건 첫 실형인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다움’을 부정하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법원은 성추행 이후 즉각 항의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엎고, 2심서 “성범죄 피해자의 행동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며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검찰 또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일관되게 피해자가 진술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력’의 범위도 넓어지는 분위기다. 법원은 지난해 부하 직원에 대한 대학 총장, 그리고 외국 주재 대사의 성폭력 혐의에 유죄를 선고하며 ‘위력 행사’를 폭넓게 인정했다. 안 전 지사 사건에서 1심은 “위력은 있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며 무죄 선고를 내렸으나, 다음달 1일 예정된 2심 선고에서 판단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을 반영해 위력에 의한 간음죄 법정형을 최고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높이는 법 개정안도 지난해 통과됐다.

재판절차와 수사과정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안 전 지사 사건 1심은 같은 법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하도록 하거나, 안 전 지사의 증언만 언론에 공개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피해자 증언 시 안 전 지사를 격리하거나 재판 과정을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대검찰청도 성폭력 고발을 맞받아치는 무고 사건 수사를, 성폭력 사건 수사 이후로 미루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처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단어는 서 검사의 미투 3개월만인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처음 내세웠다. 모 대학교수 해임소송 사건을 다루면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성희롱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엔 친구 아내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했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은 기억이 온전치 않아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진술의 객관성을 판정하는 전문적인 분석 방법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판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한 국민청원에 33만명 이상이 서명하는 등 사법부 판단에 대한 여전한 불신도 법조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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