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면 ‘마구잡이 투척’ 공소사실서 드러나
사람 올라간 사다리 걷어차고 운전 중 기사 폭행도
스카치테이프 커터기, 철제 전자가위, 열쇠뭉치, 화분, 책…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대로 사람에게 던졌다. 이 물건들은 상습적으로 ‘갑질폭행’을 해 기소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70)씨의 폭행에 사용된 주요 도구들이다. “물컵을 운전기사에게 던지고 욕설을 자주 했다”고 드러났던 이 사건 최초의 정황들은, 검찰 수사로 밝혀진 폭행 사례에 비하면 매우 경미한 수준일 정도다.
30일 검찰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신응석)는 지난달 말 이씨를 상습특수상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대한법률 위반(운전자폭행 등),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이씨는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운전기사 등 직원 9명에게 욕설을 하고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4월 조현민(36)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을 계기로 시작된 한진가(家)의 폭언ㆍ폭행 의혹 수사를 통해 이씨의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특정된 것이다.
이씨의 공소사실을 보면, 범행수법은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들을 연상시킬만큼 기상천외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씨는 자칫 큰 상처를 일으킬 수 있는 커터기, 철 가위, 열쇠뭉치 등을 직원들에게 집어 던지는가 하면, 화가 나 던진 화분에 직원이 맞지 않자 다시 집어오라고 지시한 뒤 재차 직원을 향해 던진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씨는 식재료를 충분히 사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문지방에 무릎 꿇게 한 뒤 책을 던져 왼쪽 눈을 맞혔고, “걸레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플라스틱 삼각자를 던져 청소하던 직원의 턱을 맞힌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밖에 길이 40~50cm의 밀대를 직원의 이마에 던지기도 했으며, “나무 신발장에 기름이 많이 묻었다”는 이유로 직원의 허벅지를 차기도 했다. 화초 관리를 하는 직원에겐 “초등학교도 안 나와 줄 간격 하나도 제대로 못 맞추냐”고 욕설을 한 뒤 꽃 포기를 던졌다. 직원의 눈에는 흙이 들어갔으나 이씨의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3m 높이의 사다리에서 작업하는 직원은 “일을 빨리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다리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사다리를 걷어 찬 인물은 역시 이씨다.
운전기사도 이씨의 폭행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씨는 약속 시간에 늦자 운전기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과 함께 고성을 질렀으며, 빨리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전 중인 기사의 머리 쪽으로 컵을 던지기도 했다. 기사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김없이 운전석 시트를 발로 차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수시로 뱉은 것으로 조사됐다.
갑질 폭행과 별도로, 검찰은 필리핀 여성을 대한항공 직원으로 속여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도 이씨를 기소했다. 지난달에는 인천본부세관이 해외에서 구매한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관세법 위반)로 이씨와 두 딸인 조 전 전무, 조현아(44)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갑질폭행과 출입국관리법 위반 외에도 그가 받아야 하는 재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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