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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철도와 민족 박해

입력
2019.01.3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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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와 젊은이 섞어 앉았고/우리내외 외국인 같이 탔으나/내외친소 다 같이 익혀 지내니/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 최남선이 지은 ‘경부철도가’(1908)의 한 절이다. 근대 대중교통의 총아로 등장한 철도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방사회를 열어가는 모습을 아주 간명하게 묘사했다. 철도는 요금의 다과에 따라 1등 2등 3등으로 서비스의 질을 달리하지만, 같은 등급 안에서는 남녀 신분 계급 노소 등을 차별하지 않는다. 청년 최남선은 일찌감치 문명을 선도하는 철도의 원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한국철도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인이 한국인을 모멸하고 차별하며 박해하는 기구였다. 이광수는 ‘나의 고백’(1948)에서 다음과 같은 체험담을 피력했다. “내가 부산역에서 차를 타려 할 때에 역원이 나를 보고 그 차에 타지 말고 저 찻간으로 오르라고 하기로, 그 연유를 물었더니, 그 찻간은 조선인이 타는 칸이니 양복 입은 나는 일본 사람 타는 데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분격을 느꼈다. 나는 ‘나도 조선인이오.’ 하고 조선인 타는 칸에 올랐다.”

한국철도는 모두 일본이 부설하고 운영했다. 역부는 열차가 평양역에 도착하면 ‘헤이죠오(平壤)’, 사리원역에 진입하면 ‘샤리잉(沙里院)’이라고, 일본어 발음으로 외쳤다. 한국인이 열차의 행선지를 물으면 발로 걷어찼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의 탈아입구를 주창하며 한국침략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한 선각자인데, 자신이 발행하는 ‘시사신보’를 통해 한국인이 철도에서 당하는 부당하고 억울한 대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한인 승객은 마치 화물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보다 오히려 조선인을 단골로 삼는 철도가 조선인을 화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사태일 뿐만 아니라, 무지한 인민이 항상 이와 같은 취급을 받을 때는, 혹은 반항심을 일으켜 선로에 방해를 시도하든가, 또는 전선을 절단하는 등의 소란을 연출할 우려가 있다.”(1905.4.25.)

한국철도의 승객은 당연히 한국인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철도당국은 제 요금을 내고 열차를 이용하는 한국인 승객을 짐짝으로 취급했다. 후쿠자와는 그 잘못을 지적하고 한국인의 반일투쟁이나 철도파괴운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을 공평하게 대하라고 조언했다. 일본의 한국침략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도쿄고등상업학교 학생(笹山眞一)은 여름방학 동안 경부선연선의 사회경제실태를 조사했는데, 그 보고서(‘韓國鐵道現況調査報告書’, 1906)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한인의 거의 전부는 3등 승객이지만 사실상 4등(만약 있다고 가정하면)에 가까운 대우를 받아, 승차임금은 3등 정율에 의하고 그 반대급부는 4등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는 일본인과 같은 요금을 내고도 박대를 당하는 한국인을 동정하여 철도당국에 촌철살인의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도 영국이 인도에서 특별히 제4등 열차를 설치하여 3등 운임의 반율로써 토인을 위해 편의를 제공”한 것처럼, 한국인 승객의 요금을 반액으로 감면해주든가, 일본인과 같이 공평하게 대우하는 게 타당하다고. 제 나라 철도에서조차 찬밥덩어리 신세를 면치 못한 한국인의 비참한 처지가 눈에 선하다.

곧 3ㆍ1운동 100주년이다. 한국인은 왜 일제의 물샐틈없는 탄압을 뚫고 거족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을까? 그 이유는 많지만 일상에서 겪은 민족 멸시와 박대가 직접 원인이었다. 한국인은 관청 학교 은행에서 푸대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취직 노동 임금에서도 하등인간 취급을 당했다. 제 돈 내고 타는 철도에서조차 부당한 대접을 받았으니 한국인의 울분은 날로 쌓여만 갔다. 이와 비례하여 한민족으로서의 자각도 치열해졌다.

이민족의 박해를 받으며 함께 체득한 민족주의 정서는 마침내 3ㆍ1운동으로 폭발했다. 철도에서 화물취급을 당한 한국인은 열차를 방해하고 전선을 절단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립 해방 자유 평등 민주 인도 평화를 부르짖었다. 새 시대를 여는 새 민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역설적으로 철도가 그 길을 여는데 일조한 셈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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