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몰려 사라졌다 되살아나… 2000년대 곤궁기에 연휴로
여전히 양력설에 밀려 뒷전… 김정일 생일과 겹치면 들러리
올해는 북한의 음력설이 부활한 지 30년 되는 해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없앴던 휴일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되살렸고 인민들의 살림이 곤궁해지자 연휴로 만들었다. 정권은 ‘장군님’의 배려로 포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력설보다 뒷전이고, 2월이면 돌아오는 김정일 위원장 양력 생일에 치이기 십상이다.
북한의 명절 개념은 우리와 다르다. ‘조선말대사전’(1992년 발행)에 따르면 북한 명절은 크게 국가적명절과 민속명절, 경축기념일, 국제기념일로 나뉘는데, 양력ㆍ음력 설은 추석, 정월대보름, 청명절 등과 함께 민속명절에 속한다. 국가적명절인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ㆍ4월 15일)과 김정일 위원장 생일(광명성절ㆍ2월 16일), 정권수립일(구구절ㆍ9월 9일), 조선노동당 창건일(쌍십절ㆍ10월 10일) 등과는 구분된다.
북한은 원래 음력설을 쇠지 않았다. 음력설 쇠는 것을 미신 숭배처럼 여긴 김일성 주석이 “봉건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1967년 양력설만 남기고 민속명절을 모두 없애버렸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 생일과 겹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잦은 명절이 노동력 손실과 기강 해이와 연관된다는 인식 때문에 음력설을 쇠지 않도록 정권이 관리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음력설이 다시 민속명절로서 부활한 건 1989년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당시 “친애하는 지도자(김정일 위원장) 동지가 전래의 민속적 풍습인 음력설을 잘 쇠도록 크나큰 배려를 했다”며 음력설을 다시 기념하게 된 것은 지도자의 ‘사랑’과 ‘은덕’에서 비롯된 일임을 강조했다.
2003년부터는 남측처럼 북한 주민들도 음력설 전후로 사흘간 쉴 수 있게 됐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05년 2월 김정일 위원장이 “음력설은 우리 인민의 민속명절의 하나이므로 잘 쇠야 한다. 오랜 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해 오늘의 사회주의 문화생활에 잘 구현하자”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이 음력설을 연휴로 변경한 게 ‘민심 관리’ 차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을 휴일이라는 일종의 보너스로 희석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 북한 인민에게는 음력설보다 양력설이 ‘진짜 설날’이다. 설날 관련 행사들이 대체로 양력설 즈음에 몰려 있기도 하다. 특히 광명성절과 겹친 지난해 음력 설 연휴(2월 15~17일)는 들러리 신세였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일 위원장 생일을 기념하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기는 하지만 북한에서도 음력설에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과 덕담을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고 하니, 우리와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듯하다. 북한 매체들도 음력설에 연날리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하는 주민들을 보여주고는 한다. 물론 만수대언덕 등에 위치한 김일성ㆍ김정일 동상을 참배하는 주민들도 많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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