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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조원 예타 면제’를 둘러싼 세 가지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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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조원 예타 면제’를 둘러싼 세 가지 의문점

입력
2019.01.31 04:40
수정
2019.01.31 09:0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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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예타, 면제만이 능사? 

 ‘예타→사업성 없음→면제’ 사업은 

 경제성 부족 이유 등 자료 남지만 

 아예 면제 땐 총사업비 등 깜깜 

 ② 정부 선심성 정책? 

 환경평가 면제받은 4대강 사업도 

 6개월 내에 끝내는 간이평가는 해 

 “균형발전 아닌 총선 표” 비난 확산 

 ③ 균형발전은 SOC로만? 

 지역 낙후 인프라 고려할 땐 필요 

 청사진 없이 철도만 깔아주면 

 주민에 큰 부담 줄 수 있는 결정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9일 발표한 24조원대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 방안의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규모 사업에 예타 ‘면죄부’를 주는 조치가 과연 타당한지,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은 아닌지, 도로나 철도를 까는 것만이 균형발전에 필수인 건지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문이 제기된다.

 ①예타, 면제만이 능사인가 

예타는 국가 예산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도로ㆍ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할 때 사전에 사업성을 꼼꼼히 따져보는 제도다. △건설 비용과 건설 이후 편익 중 어느 게 더 큰 지(경제성 분석) △사업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지(정책적 분석)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지(지역균형발전) 등을 토대로 사업성을 평가한다. 이를 모두 고려한 종합평가(AHP)가 0.5를 넘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 예타 면제를 강행하며 ‘지방은 인구와 물류 통행량이 적어 예타를 통과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인프라가 부족해 점점 낙후지역으로 전락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예타는 예비 조사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 또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국가재정법이 개정돼 예타 면제 대상에 ‘국가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 추가됐다. 설령 예타에서 낙제점을 받아도 이 같은 면제조항을 근거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2013년 조정식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3~2013년 사이 예타 문턱을 넘지 못했어도 공사가 진행된 사업은 21개(7조3,000억원)나 된다.

그나마 ‘예타→사업성 없음→면제’를 거친 사업들은 최소한 △총사업비는 얼마나 드는지 △이 사업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경제성이 부족한지 근거자료라도 남는다. 그런데 이번에 예타를 면제 받은 23개(24조1,000억원) 사업 중 새만금국제공항 등 14조8,000억원 규모의 16개 사업은 예타조차 거치지 않았다. 작년 11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신청이 접수된 후, 불과 두 달여의 ‘초고속ㆍ물밑’ 검토를 거쳐 면제가 확정된 것이다. 이들 사업이 예타를 건너뛰고 신속히 추진되는 배경은 아직 정부밖에 모르는 셈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예타 면제 사업이 향후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 과거 예타 자료라도 있어야 어떤 부분의 추계나 판단이 잘못됐는지, 또 제도를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을 논의할 수 있다”며 “예타조차 거치지 않으면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예타를 하지 않은 사업들은 총사업비가 과소 추계돼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역대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역대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_김경진기자

 ②정말 선심성 아닌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타 면제 사업은 내년부터 2029년까지 10년에 걸쳐 추진된다”고 밝혔다. 예타 면제 토목사업으로 1~2년 단기 경기부양을 시도한다는 비판을 반박하고, 중장기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많다. 어차피 10년여에 걸쳐 지역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면, 이번처럼 속전속결로 예타를 면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타 조사의 항목별 가중치를 조정해 지역균형발전 배점을 높이고, 지자체가 신청한 우선 사업은 6개월 내 간이 예타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도 사업기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도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는 대신 6개월 내에 끝내는 간이 평가를 했는데, 그런 형식이라도 갖췄어야 했다”며 “대체 무슨 권한으로 정부가 이 사업은 되고, 저 사업은 안 되고를 평가해 면제를 해주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홍 부총리의 발언은 전격적인 예타 면제조치가 국가균형발전 등 ‘순수한’ 목적에서라기보다 내년 총선 표심 등을 겨냥했다는 의심을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③균형발전은 SOC로만 되나 

이번 예타 면제 사업 중 85%(20조5,000억원)는 도로ㆍ철도 등 SOC 사업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지역의 낙후한 인프라를 고려할 때 SOC 투자는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SOC 투자를 확대해야 국가균형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균형발전은 지역에 사람이 모이게 하는 것”이라며 “그 지역에 어떤 산업을 키울지,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할지 정부가 중장기 청사진을 갖고 예타 면제를 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 없이 도로, 철도만 깔아주고 균형발전을 외치니 총선용이란 비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인 육동일 충남대 교수는 “SOC 건설 이후 운영 과정에서 주민에게 얼마나 혜택을 줄지,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지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데 그걸 생략했다”며 “지역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위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번에 다른 지자체와 달리, R&D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신청해 4,000억원을 확보했다. 이 재원으로 △인공지능(AI) △자동차 등을 연구하는 집적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당장 도로 하나 까는 것보다 향후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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