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협의 중”… 31일 당국 조율 후 산은 이사회 상정
대우조선 흑자ㆍ업황 개선 등 영향… 성사 땐 20년 끈 매각 작업 완료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한다. 인수가 성사되면 그간 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 등 ‘빅3’ 체제로 유지되던 국내 조선업계가 ‘빅2’로 재편된다. 수주잔량 세계 1,2위 조선사의 합병으로 초대형 조선사가 탄생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30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산업은행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31일 금융 당국과 조율을 거친 뒤 이사회를 열어 대우조선 매각 안건을 상정ㆍ논의할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미 오랫동안 물밑에서 매각 인수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 가치는 약 2조1,565억원(30일 종가기준ㆍ3만6,100원)인데 현대중공업의 자금 여력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7,000억원 가량이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최근 사우디아리비아의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에게 최대 19.9%까지 지분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확보하게 될 자금(최대 1조8,000억원)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실탄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해양이 2017년 이후 2년 연속 흑자를 낸데다, 글로벌 조선업황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 등이 현대중공업의 인수 추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올해도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이 확실시되고,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선 등에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현대중공업에 인수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기준 전 세계에서 발주한 LNG선 43척 중 국내 조선 3사가 수주한 게 38척에 달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16척, 대우조선해양이 12척, 삼성중공업이 10척을 각각 수주했다.
인수가 성사되면 수주잔량을 기준으로도 경쟁사를 압도하는 매머드급 조선사가 탄생하게 된다. 영국 조선ㆍ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수주잔량 1위는 현대중공업그룹(1만1,145CGTㆍ표준화물선 환산톤수)이다. 2위인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잔량(5,844CGT)까지 합하면 3위인 일본 이마바리(5,243CGT)와 3배 이상 차이가 벌어진다.
현대중공업의 인수가 성공하면 대우조선해양은 1999년 산업은행 주도의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이후 20년 만에 새 주인을 찾게 된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조선사의 시황, 중국과의 경쟁, 대한민국의 산업방향 등을 고려할 때 빅2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대우조선의 채무재조정 작업이 한창이던 2017년 4월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도 “대우조선이 구조조정을 통해 작지만 단단한 회사가 되면 인수합병(M&A)으로 새 주인을 찾겠다”고 언급하는 등 정부도 일찌감치 대우조선의 M&A를 검토해왔다.
업계에선 대우조선을 인수할 주체로 현대중공업그룹을 꼽아왔다. 지리적으로 조선소가 인접한 삼성중공업이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선 부문을 키울 의지가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현대중공업그룹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전문가들은 ‘빅2’ 체제로 조선업계가 재편되면 그 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저가수주ㆍ출혈 경쟁이 사라져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이 호황일 때도 국내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 선가를 낮출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며 “두 업체가 합쳐지면 과거와 같은 ‘제살깎기 수주’ 관행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뒤 수주 절벽에 시달리며 최근까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만큼 체력이 회복됐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현대호텔, 하이투자증권 등 계열사를 매각하고 농장 등 부동산을 잇따라 매각하며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벌여왔고, 대규모 인력 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은 물론이고, 현대중공업도 그 동안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벌인 상태라 자칫 하면 ‘환자가 보호자로 새 환자를 떠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관계자도 “최종 매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조의 반발도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두 기업이 합병될 경우 추가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대우조선 노조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인수에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또 2014~15년 천문학적인 적자의 원인이었던 해양플랜트 사업이 여전히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만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더라도 우량 사업인 상선ㆍ특수선 부문만 사들일 거란 전망도 나온다. 대우조선의 사업부문은 컨테이너선과 LNG선이 포함된 상선부문, 잠수함 등의 특수선부문, 부실 원인이 된 플랜트부문 등 3개로 이뤄졌다. 실제 지난해 채권단에선 상선과 특수선은 분리해 매각하고, 플랜트는 청산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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