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복동 할머니 발인
“먼저 좋은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을 마주한 길원옥(91) 할머니는 이렇게 되뇌었다. 입가엔 옅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눈가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오랜 벗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길 할머니는 영정이 떠난 평화의 우리집 마당을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다.
지난달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 할머니의 발인이 이날 오전 6시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른 새벽부터 40여 명의 추모객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키기 위해 빈소에 모였다. 추모객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헌화하고 큰절을 두 번씩 올렸다.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추모객들은 오전 6시 28분쯤 영정과 위패를 든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를 선두로 발인장으로 향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디자인제품을 만들면서 김 할머니와도 연이 깊었던 윤 대표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6시 30분쯤 영결식장에서 김 할머니를 모신 관이 나오자 추모객들 사이에선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는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란 글귀를 관 위에 적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닫힌 운구차의 유리창에 손을 대고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운구차는 김 할머니가 생전 머물던 평화의 우리집으로 향했다. 양팔을 벌리고 환한 표정을 짓는 김 할머니의 영정과 꽃으로 장식된 트럭이 앞장섰다. 경찰 순찰차와 오토바이도 교통을 통제하며 함께 이동했다.
오전 7시 5분쯤 도착한 평화의 우리집에서 추모객들은 김 할머니가 지내던 방으로 들어갔다. 김 할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와 생전에 쓰던 유품들은 그대로였다. 윤 대표가 장롱 안을 가리키며 “할머니, 좋은 저 외출복, 수요시위 갈 때 입었던 저 옷 어떡하지, 그대로 잘 둘게”라고 말하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렸다. 윤 대표는 다시 벽 한쪽에 걸린 족자를 가리키면서 “교토 장학생들이 평양에서 무용 배우고 사 온 거야, 어떠세요”라고 김 할머니에게 물었다.
추모객들은 영정을 향해 절을 두 번 한 뒤 일어섰다. 운구차는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노제가 끝나고 추모행렬은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으로 향했다.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바라는 김 할머니의 마지막 집회를 위해서.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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