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천개의 노란 나비가 배웅한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천개의 노란 나비가 배웅한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길

입력
2019.02.01 15:07
0 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추모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 대사관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추모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 대사관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위로금을 받으려고 싸웠습니까? 천억을 준대도 안됩니다. 뉘우치고 사죄하십시오.”

서릿발 같았던 고인의 육성이 차갑게 얼어붙은 광장으로 울려 퍼졌다. “아직 우리에게 해방은 오지 않았다”고, “억울하고 원통해 죽을 수도 없다”고 외쳤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리자 천 개의 노란색 ‘종이 나비’ 물결이 출렁였다.

김 할머니의 노제가 엄수된 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노란 종이 나비를 양손에 들고 시대의 정신이 떠나는 마지막 길을 따라 나섰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시민 1,000여 명은 오전 9시 서울시청 앞에서 김 할머니를 위한 추모행진을 시작했다. 두 팔을 힘차게 벌린 채 나비 떼에 둘러싸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행렬을 인도했다.

생전 고인은 쉬이 웃지 않았다. “언젠가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날이 오면, 그때 마음껏 웃겠다”며 미소를 아꼈다고 한다. 끝내 그 날을 맞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난 김 할머니는 그림 속에서나마 회한을 내려놓고 활짝 웃었다.

일본의 공식 배상을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곳은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1,372회의 수요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연합뉴스
일본의 공식 배상을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곳은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1,372회의 수요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연합뉴스

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든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선두에 서자 윤미향 정의연 대표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뒤를 따랐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만장 94개를 두 손으로 치켜든 채 운구차 뒤로 늘어섰다.

한국 나이로 94세인 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94개의 만장이 준비됐다. ‘일본은 조선학교 처벌 마라’ ‘하나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 등 만장에 적힌 문구는 김 할머니의 어록에서 따왔다.

만장 행렬의 뒤를 따른 시민들은 노란색 나비 모양 종이가 달린 막대를 들었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한파 속에서도 추모 행렬의 길이는 800m에 달했다.

서울광장에서 경복궁 앞까지 1.3㎞ 가량을 쉼 없이 행진한 행렬은 오전 9시 40분쯤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이르자 비로소 멈췄다. 김 할머니가 생전에 수도 없이 방문했던 이 자리엔 긴 싸움의 오랜 동지였던 이용수 할머니가 함께했다.

일본대사관을 향해 늘어선 시민들은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 “법적 배상을 이행하라!”는 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할머니도 평화 나비 네트워크 활동가들의 손을 꼭 잡은 채 참담한 표정으로 분노의 함성에 목소리를 보탰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고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고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오전 10시 20분쯤 서울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 장례위원회’ 주관으로 영결식이 거행됐다. 판소리 예술단 바닥소리의 ‘상여소리’ 공연으로 시작된 영결식은 묵념, 추모영상 상영, 추모사,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영결식에 동행한 이 할머니는 소녀상의 차가운 손을 꼭 감싸 쥐었다.

전세계를 누비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힘쓴 김 할머니의 생전 영상을 보며 시민들은 하나 둘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고인 소개에 나선 마리몬드 윤 대표는 “콩고와 우간다의 성폭력 생존자들이 김복동 할머니를 ‘마마’라고 부르며 ‘우리들의 희망’이라 말했다”면서 “김 할머니가 앞장서 세계사회에 알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초국적으로 연대하게 했다”고 고인의 삶을 평했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연극을 제작해온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도 김 할머니를 추모했다. 이 대표는 “늘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있던 내 마음을 고인이 열어줬다”며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여성인권운동가로서 늘 약자를 위해 살아온 당신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목이 메어 어렵게 발언을 이어가던 이 대표는 “할머니…할머니…우리 할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되뇌며 힘겹게 추모사를 마쳤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상주 정의연 윤 대표는 “지금 여기, 우리는 이미 김복동이 되었다”며 일본 대사관을 향해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윤 대표는 “언젠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가 0이 될 때, 일본 정부는 안심할 지 모르겠지만 수백만의 나비들이 전쟁범죄자인 당신들을 향해 외칠 것이며, 그 목소리를 통해 할머니는 마침내 부활할 것”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할머니는 죽음조차 이겨내고 전국 곳곳에 평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상처 입은 자를, 힘없는 자를 끌어안는다는 게 무엇인지 당신으로부터 배웠다”며 고인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시민들의 헌화를 마지막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오전 11시 30분 운구차는 김 할머니가 영면에 들어갈 장지로 떠났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