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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초등학교, ‘한글 안 떼고 가도 될까요?’

입력
2019.02.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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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초등학생들이 지난달 8일 예비소집일에 서울 용산구 신용산초등학교를 찾아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예비 초등학생들이 지난달 8일 예비소집일에 서울 용산구 신용산초등학교를 찾아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 한글을 못 뗐어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 맘카페에는 예비 학부모들의 한숨 섞인 글들이 자주 올라옵니다. 아이가 한글을 모르는데 학교에 가게 됐다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글은 반드시 떼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글입니다.

정말, 초등학교에는 한글을 다 떼고 가야 할까요. 현행 교육과정대로라면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글을 처음 배우는 게 당연합니다. 누리과정에는 한글 교육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육부는 2017년 1학기부터 ‘한글책임교육’을 내세우며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의 한글 교육 시간을 기존 27시간에서 68시간으로 대폭 확대했습니다. 또 지난해 2학기부터는 수준별 맞춤형 한글 학습 프로그램인 ‘한글 또박또박’을 개발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한글을 배우도록 하는 등 한글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도 “한글 선행 학습을 하지 않아도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글을 익힐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한글 선행 교육을 당연시합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학부모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의 89.8%가 취학 전 한글 교육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초등 1학년 적응을 위해서(42.5%)’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큰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김모(43)씨도 “아이가 한글을 모르고 학교에 가면 주눅이 들고 적응을 못할까 걱정되는 게 크다”며 “큰 애는 학습지로 이미 뗐고, 둘째도 입학 전에 반드시 떼서 보낼 생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교사들은 한글을 모르고 입학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합니다. 교과서부터 학생들이 한글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게 구성돼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학 과목 같은 경우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 언어가 많이 나와 한글을 못 뗀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학교가 진정으로 한글을 책임진다고 말하려면 다른 교과목들의 수준도 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글책임교육을 한다고는 하지만 당장 교과서부터 아이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한글 실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학교나 교사에 따라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알림장을 받아 쓰게 하거나, 받아쓰기를 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부모들은 자연스레 미리 한글을 가르치는 길을 택합니다. 지난해 9월 교육부의 설문조사를 보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들은 학습지와 같은 방문교사(41%)를 이용해 한글을 미리 배웠다고 답했습니다.

누군가는 한글을 배우고 올 것이고, 교실은 늘 앞서가는 아이를 기준으로 돌아갔던 모습이 선명한 부모들에게 사실 선택권은 없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겁니다. 교육부는 2000년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 한글 교육 시간을 이전의 60시간에서 18시간으로 크게 줄였는데요, 그 이유는 아이들이 한글을 다 깨우치고 들어오니 여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수월성 중심의 교육 철학, 체계적이지 못한 교육과정과 같은 크고 작은 오점을 목격해 온 학부모들은 아무리 ‘공교육을 믿으라’고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신은 자녀 교육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새해에는 학부모들이 ‘ㄱ’ ‘ㄴ’부터 가르치겠다는 교육부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교육부가 신년 과제로 꼽았던 교육 신뢰 회복의 시작은 거창한 일이 아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한글책임교육을 성공하는데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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