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청담 ‘미나미카와 시몬 & 네이슨 힐든’ 2인전
선은 한 두 개, 색은 세 개쯤에 인물이나 풍경은 거의 없다. 캔버스의 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할 만큼 간단하고 또 직관적이다. 각양각색 오브제로 채운 회화보다 단순하지만 왠지 시선은 더 오래, 깊게 머문다. 보면 볼수록 붓질 하나하나의 의미와 작품 탄생 과정이 궁금해진다.
서울 청담동 학고재청담에서 열리는 ‘미나미카와 시몬, 네이슨 힐든’ 2인전은 ‘현대’라는 동시대를 바라보는 젊은 작가 둘의 시선을 다룬다. 한국에는 생소한 이름인 미나미카와와 네이슨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 받는 회화 작가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현대 사회라는 주제를 간략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닮았다.
일본인 작가 미나미카와는 이미지를 해체한 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현대를 표현한다. 입체감이 거의 없는 삼각형과 둥글둥글한 덩어리로 표현한 스핑크스, 몇 줄기의 선으로 여성을 스케치해 그 위에 자유롭게 물감을 얹어낸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군데군데가 텅 비어있거나 묽은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미완성 그림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 맞춰 내한한 미나미카와는 “늘 뚜렷하지만은 않은 사실과 그 사실들 사이에서의 고민을 미완성 상태의 추상적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힐든은 현대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알루미늄 판을 작품의 주 무대로 삼는다. 그는 ‘성과’가 모든 것인 산업 사회에서 까맣게 잊힌 ‘생산 과정’을 다시 본다. 알루미늄 판을 겹치게 쌓고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뿌려 특정 작품이 다른 작품의 흔적이 되도록 하는 등 작품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힐든은 ‘현재’에 집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소한 물건들을 작품 소재로 쓴다. 작업실 바닥의 구겨진 종이를 포착해 사진을 찍고 스크린 프린팅한 뒤 이를 알루미늄 판에 붙여 테두리를 따라 뚫어낸 작품이 대표적이다.
과감하게 칠한 브러시 자국도 힐든의 시그니처다. 파도를 연상케 하는 붓 자국은 사실 물감을 칠하고 일정시간 동안 작품을 건조시킨 뒤 다시 물을 뿌려 물감을 씻어낸 흔적이다. 힐든은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면서 물감 건조시간을 서로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흔적의 정도’를 조절한다. 어떤 작품엔 붓의 테두리만 간신히 남아 역동적이면서도 공허한 현대의 면모를 보여준다. 힐든은 “특정 물질성을 흔적으로만 남기는 작업은 현대사회 속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학고재청담은 미나미카와와 힐든의 전시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둘의 작품 14점을 섞어 배치했다. 작품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찬찬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시는 3월 10일까지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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