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브랜드 르까프를 탄생시킨 ㈜화승이 지난달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80년대 ‘국산 운동화’ 바람을 일으키며 프로스펙스(창립 1981년)와 함께 전성기를 누렸던 르까프(1986년)의 30년만의 쇠락은 국내 신발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화승과 업계에 따르면 화승이 적자 누적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당장 600여개의 매장(직영ㆍ대리점)과 50여곳의 협력업체가 심각한 타격을 맞게 됐다. 심지어 200여명에 달하는 화승 본사 직원들 역시 업무가 중단되면서 대거 이탈 현상까지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법원이 화승의 기업회생절차 신청 하루 만에 채권추심과 자산처분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화승은 지난해 8월부터 신발과 의류 등 물건을 대는 납품업체에 1,000억원에 이르는 어음을 발행했다.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모든 채무가 동결돼 화승 입장에선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어음으로 대금을 받은 협력업체 등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60여년 간 토종브랜드로 자존심을 지켰던 화승이 어떻게 한 순간에 몰락해버린 것일까. 화승의 시작은 제법 화려했다. 1953년 설립된 동양고무공업주식회사가 모태인 화승은 ‘국내 신발 1호’라 불리는 ‘기차표 고무신’을 생산하며 서민들과 함께 했다. 1978년에는 미국 브랜드 나이키의 운동화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1980년 화승으로 회사명을 바꾼 뒤 르까프를 출시해 ‘국민 운동화’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그 인기에 힘입어 화승은 1980년대 재계 서열 22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단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부도가 나면서 사세가 기울었다. 화의(파산을 예방할 목적으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 맺는 강제계약)에서 벗어나는 데 6년이나 걸렸다. 1994년 미국의 스포츠 브랜드 케이스위스에 이어 2007년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과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제품을 생산, 유통하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아웃도어 열풍이 일면서 화승의 매출은 2012년 5,547억원, 2013년 5,667억원까지 오르며 선전했다.
그러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해외 스포츠 브랜드의 공습은 화승에 치명타를 입혔다. 여기에 ‘국산 운동화’라는 신화가 오히려 ‘오래된 이미지’로 전락하면서 소비자들의 취향과도 멀어졌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15년 매출은 2,363억원으로 곤두박질쳤고, 결국 화승그룹에서 분리됐다. 화승은 화승그룹 10여개 계열사 중 스포츠 브랜드를 맡고 있었다.
화승은 산업은행과 KTB프라이빗에퀴티가 공동으로 설립한 사모투자합자회사에 넘겨졌다. 그 뒤에는 더욱 허덕였다. 2016년에는 영업손실 190억원으로 적자전환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가을과 겨울 매출이 급락하면서 현금 유동성마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의류나 신발 등 물품을 공급한 50여곳의 협력업체가 ‘줄도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승의 어음 결제 소식을 듣고 IMF 외환위기 때가 떠올랐다”며 “어음을 발행한 후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물건을 납품한 업체들은 두 손 놓고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지난 6일 피해 규모가 큰 납품업체 대표들이 긴급 채권단 회의를 열었고, 이후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승 관계자는 “기업회생 신청으로 대리점 등에 지급해야 할 대금 등이 완전히 묶여있는 상황”이라며 “협력업체들의 피해 규모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회생법원은 한 달 이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법정관리 기업으로 인가 받기까지는 최소 6개월 정도 걸린다. 화승은 영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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