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의 작은 쉼표, 홍성 죽도
남당항에선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천수만 바다 너머로 태안에서 길게 뻗은 안면도가 물과 하늘의 경계에 걸리기 때문이다. 수면에 낮게 떠 있는 ‘죽도’도 안면도의 산세에 포개져 분간이 쉽지 않다. 24가구에 4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 있는 듯 없는 듯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죽도는 지난해부터 유람선이 운행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홍성에 하나밖에 없는 유인도다.
죽도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잘록한 허리로 이어져 있다. 해발고도 10m 안팎의 봉우리마다 조망대가 세워졌고, 조망대와 마을을 연결하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두어 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죽도에선 튼튼한 두 다리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차가 없으니 당연히 넓은 도로도 없다. 이따금 포구를 드나드는 작은 배의 엔진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다. 그래도 숲과 해변, 갯벌, 포구에 싱싱한 먹거리까지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섬 자체가 쉼터다.
남당항에서 뱃길로 20분 남짓 죽도 선착장에 내리면 바로 산책로가 연결된다. 언덕을 넘으면 조개껍데기 뒤덮인 작은 해변을 지나 첫 번째 조망대에 닿는다. 하늘 반, 바다 반, 높이에 비해 전망이 시원하다. 작은 섬 죽도는 그보다 더 작은 12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다. 올망졸망 새끼 섬들이 부러운 듯 그리운 듯 죽도를 둘러싸고 천수만에 동동 떠 있다. 일부 섬은 물이 들고 남에 따라 가느다란 모래 띠로 이어졌다 끊어진다. 첫 번째 조망대의 다른 이름은 ‘옹팡섬’이다. 용이 물길을 끊은 섬이라는 뜻이란다. 두 번째 조망대는 ‘당개비(혹은 담깨비)',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당산이라는 의미다. 세 번째는 가장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바지’다. 조망대마다 홍성을 대표하는 인물 캐릭터를 세운 점도 재미있다. 옹팡섬은 만해 한용운, 당개비는 김좌진 장군, 동바지는 최영 장군이 지키고 있다. 조망대마다 보이는 풍경과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죽도라는 이름답게 섬의 모든 봉우리는 대나무로 빼곡하게 덮여 있다. 천수만의 바닷바람도 대숲에선 한풀 걸러진다. 댓잎 서걱거리는 산책로가 더 싱그럽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시누대로 만든 복조리가 섬의 주요 수입원이던 때도 있었지만 현재는 주민 대부분이 바다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유람선에 왜 갈매기가 따라오지 않는지 아세요?” 죽도로 가는 배에서 이희자 홍성 문화관광해설사가 한마디 던진다. “새조개, 소라, 굴 등 고급 먹거리가 넘쳐나는데 왜 값싼 새우과자를 먹겠어요?” 죽도의 갈매기는 어패류를 물고 하늘 높이 날아 바위에 떨어뜨려 껍데기를 깨서 먹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어쨌거나 요즘 죽도에선 집집마다 굴을 까느라 바쁘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비닐하우스에 들렀다. 속살이 뽀얀 굴도 있지만, 빛깔이 살짝 탁한 굴이 더 많다. 양식과 자연산의 차이란다. ‘양식이 탱글탱글하고 더 맛있다’는 주민의 설명에도 손은 저절로 자연산 굴을 집고 있었다. 정제하지 않은 짭조름한 바다내음과 버무려진 상큼한 굴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죽도에서만 맛볼 수 있을 거라는 느낌, 순전히 기분 탓이라 해도 오래 남을 듯하다.
죽도로 들어가는 배는 남당항에서 매일 오전 9시, 11시, 오후 1시30분, 2시30분, 4시 출항한다. 죽도에서 나오는 배 시간은 여기서 각각 30분을 더하면 된다. 매주 화요일은 운휴, 물때와 기상에 따라 예고 없이 쉴 수 있으니 운항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남당항 041-631-0103.
홍성=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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