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한국 경제 늪이 되다] <4> 임금근로자 확대가 답이다
정부, 2017년 3조원 가까이 창업 지원 예산 투입
“경제적 불안감에 마음이 급하니까 같이 퇴직한 사람 중엔 벌써 창업해 가게를 연 사람도 많아요.”
국내 주요 보험사에서 부장까지 지낸 뒤 지난해 10월 희망퇴직한 김진수(가명)씨는 지난달까지 회사의 지원으로 3개월짜리 전직ㆍ창업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희망퇴직 직후인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재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을 알려주거나, 창업주를 초빙해 강의를 듣는 식으로 이뤄졌다. 협동조합과 캘리그래피, 미스터리 쇼퍼 등 강사로 온 창업주들의 사업 분야는 다양했다. 이들은 하나 같이 “회사 밖에서도 할 일이 많지만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끝까지 이수한 사람들은 최초 신청자의 절반 이하였다. 김씨는 “보험업계의 어려운 업황 탓에 다른 회사로 재취업하기 힘들다 보니 전직을 포기한 사람들이 퇴직 1,2개월 만에 서둘러 창업에 나서면서 프로그램 참여자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주변 퇴직자들이 잇달아 창업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는 김씨도 현재 창업을 염두에 두고 아로마테라피 등을 공부하고 있다.
퇴직자들이 재취업 대신 창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회사들은 아예 퇴직금 중 일부를 창업 명목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올해 235명이 희망퇴직한 신한은행은 창업지원금으로 1인당 1,000만원을 지급했다. 15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동양생명 관계자는 “2,000만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창업 지원에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4월 공개한 ‘창업정책의 실효성 제고 방안’에 따르면 창업 촉진ㆍ지원 명목으로 2017년에만 2조8,260억원이 투입됐다. 퇴직한 중고령층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창업 프로그램은 180개(중앙정부 89개ㆍ지방자치단체 91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미 포화한 자영업 시장에서 이런 방식의 창업 독려 방안은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당장 정부 지원금만 해도 약 92%가 융자 등 창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에 방점을 두고 있다. 자영업 특성상 시제품을 사전에 마음껏 만들어볼 수 있는 테크숍 같은 기반시설 건립이나, 폐업해도 다시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지만 오히려 정부의 창업지원금은 ‘을(乙)들의 전쟁’을 심화하는 쪽으로 집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퇴직자를 대상으로 단기간 진행되는 회사의 창업 프로그램도 실효성을 갖기 힘들다. 결국 재취업에 실패한 퇴직자들은 융자금과 퇴직금으로 받은 2억~4억원의 소규모 자본으로 생계형 창업 시장에 뛰어 들고, 서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다 폐업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해 신규 창업자 대비 자영업자 폐업 비율은 72.2%에 달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작정 창업만 권할 게 아니라 조기 퇴직한 이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자영업 폐업시 자본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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