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국장 ‘수뇌부가 담합 행위 인식하고도 늑장 조치 등 직무유기’ 검찰 고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직무정지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유선주 공정위 심판관리관(국장급)이 이번에는 김 위원장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위원장이 담합 사건에 연루된 대기업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 검찰은 사상 초유의 공정위원장 내부고발 사건에 대해 정식 수사 절차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유 국장이 김 위원장 등 공정위 관계자를 직무유기, 직권남용, 범인은닉도피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에 배당했다. 피고발인에는 김 위원장뿐 아니라 지철호 부위원장(차관급), 채규하 사무처장(1급) 등 공정위 수뇌부와 기업 담합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카르텔조사국 소속 간부 등 10여명이 포함됐다. 검찰은 지난달 고발인을 불러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등 수사 착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국장은 유한킴벌리의 담합 사건에 대한 지난해 2월 공정위의 조치를 문제 삼고 있다. 당시 공정위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41건의 정부 입찰을 담합한 유한킴벌리와 대리점 23곳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공정위는 유한킴벌리 본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담합 가담자가 먼저 자진신고하면 처벌을 면하는 리니언시 제도를 이유로 ‘을’인 대리점만 처벌받았다. 이에 대해 유 국장은 김 위원장을 포함한 공정위 수뇌부가 유한킴벌리 등 기업들의 담합 행위를 인식하고도, 공소시효가 지난 뒤에야 사건을 처리해 형사처벌을 피하도록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 고발장에는 당시 공정위가 ‘늑장 조사ㆍ처분’ 등으로 유한킴벌리의 책임을 면하게 해 직무를 유기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2014년 김앤장 소속 유한킴벌리 측 변호사로부터 500여쪽 분량의 자진신고서를 받아 시효가 임박한 것을 알았음에도, 3년이 지나서야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등 증거인멸을 방치했고, 본사의 ‘강압’ 여부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리니언시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2010~2013년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담합행위들의 공소시효(5년)가 지나버려 어차피 형사처벌이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유 국장은 유한킴벌리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담합 사건들이 공정위 직원들의 직무유기와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처벌받지 못했다면서 지난해 말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유 국장은 고발 경위에 대해 “지난해 2월 유한킴벌리 사건 처리의 부당함을 김 위원장에게 상세 보고했지만 도리어 권한을 박탈당하는 등 내부 해결이 불가능해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담합 사건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종결되는 관행을 지적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도 했다. 반면 공정위 관계자는 “시효에 임박해 자진신고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유 국장이 김 위원장의 직무정지 조치에 반발해 검찰 고발의 강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앞서 유 국장은 공정위 조사 부실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수뇌부와 갈등을 겪다가 지난해 10월 직무에서 배제를 당했다. 김 위원장은 고발 건에 대해 대변인을 통해 “현 단계에서는 수사의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어 대답이 곤란하다”는 말을 전해 왔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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