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의 천재들
앤드루 산텔라 지음ㆍ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발행ㆍ240쪽ㆍ1만3,800원
르네상스 시대 중심 인물 중 한 명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말 그대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화가이면서 빼어난 과학자였고 뛰어난 군사기술자의 면모를 갖췄다. 한 사람의 업적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류 문화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여럿 남겼다. 어떤 일에 착수하면 천재성을 발휘해 순식간에 결과물을 내놓았어야 가능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빈치는 ‘미루기의 대가’였다.
다빈치는 “여유가 있을 때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는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109쪽) 그가 생전에 완성한 그림은 20편에 불과했다. 천재라는 수식은 적합하지만, 화가라는 호칭은 좀 머쓱해진다. 남긴 그림 중 ‘암굴의 성모’라는 동명 그림이 두 개 있는데, 두 그림은 다 극단적인 미루기의 산물이었다. 밀라노의 무염수태 성도회가 의뢰한 ‘암굴의 성모’는 다빈치가 7개월 만에 완성하겠노라 약속했지만, 몇 년 뒤에나 그림을 다 그릴 수 있었고, 낮은 그림값에 불만을 품은 다빈치는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치웠다. 성도회는 그림을 다시 의뢰했고, 다빈치가 똑 같은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15년이 걸렸다. 결국 성도회 제단 벽에 그림이 걸리기까지 25년이 소요됐다. 부지런한 천재로 여겨질 다빈치에 대한 선입견을 바꿀 만한 일화다.
어떤 일을 미루는 행위는 종종 게으름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게으름을 권장하는 사회는 없다. 가톨릭의 칠죄종(7개 죄악) 중 하나가 나태다. 미루기는 죄악에 가깝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경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하지만 미루기는 현실이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미룬다. 일을 미루고, 청소를 미루고, 공부를 미룬다. 심지어 식사를 미루기도 한다. 미루기는 일상의 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미루기의 심리를 딱히 규명하려 하지 않는다. 미루기는 죄악이나 다름 없고, 무언가를 미루고 나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루기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 사람들은 유ㆍ무형의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왜 무언가를 미루려는지, 미루려는 행위 자체를 마냥 나쁘게 봐야 하는지, 서양 문화 속에서 미루기는 어떻게 평가 받아왔는지, 유명 인물 중에 미루기와 관련된 사연은 없었는지, 미루기를 삶과 죽음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살펴본다. 미루기가 이뤄지는 원리와 미루기에 대한 사유를 담으면서 미루기를 철학적 차원에서 고찰하는, 일종의 미루기 대사전이다. 저자가 미루기에 이렇듯 특별한 관심을 가진 건 그가 글쓰는 사람으로서 원고 작성을 너무나 자주 미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왜 미루는가. “일을 미루는 사람은 일이 자기 능력을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미룬다.” “미루는 행동은 이들에게 실패의 원인인 동시에 실패에 대한 변명이 된다.”(55쪽) 또는 “내가 해낸 일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가 무서워서 일을 미룬다거나”, 아니면 “권위자에게 고분고분 대응해야 하는 게 분해서라거나”(61쪽), “그냥 너무 귀찮아서일 수도”(62쪽) 있다. 스릴 탓도 있다. “그것은 위반에서 오는 스릴일 수도 있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황홀함일 수도 있다.”(91쪽)
그렇다면 미루기는 손가락질 당해야만 할 대상일까. 저자는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자기 계발의 시대 미루기의 미덕을 설파한다. 중요한 아이디어는 결국 빈둥거리는 시간에서 잉태하지 않냐는 이유에서다. 다빈치가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마감 시간을 성실히 지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은 하나도 못 남기지 않았을까.”(111쪽)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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