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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20세기 10대 상품 ’포스트잇’은 실패의 산물

입력
2019.02.23 1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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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의 개발자 아서 프라이
포스트잇의 개발자 아서 프라이

3M은 원래 광산 회사였다.

3M이라는 이름도 미네소타 광산ㆍ제조업 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의 앞 글자에서 따온 거다. 회사는 광산업에서 실패한 뒤 사포와 연마석을 만드는 제조업체로 전환해 방수 사포, 자동차 도색용 마스킹 테이프 같은 혁신 상품을 출시했다.

당시 셀로판지는 열에 약하고 기계 코팅을 할 때 찢어지고 평평하게 부착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는데 3M이 수 없는 실험 끝에 1930년에 만든 ‘스카치테이프’는 이런 문제를 해결했고, 접착테이프의 보통명사가 됐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3M을 상징하는 제품은 1977년 출시된 ‘포스트잇’이다. AP통신 선정 20세기 10대 상품에도 꼽힌 포스트잇은 실패의 산물이다.

3M 직원이었던 아서 프라이는 주말에 예배를 볼 때 노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찬송가에 조그만 쪽지를 끼워 놓곤 했다. 그러나 쪽지가 자꾸 빠져 나와 곤란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책에 표시를 하기 위한 접착용 쪽지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1974년 어느 날 교회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동료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가 발표회에서 소개한 접착제 생각이 난 것이다. 실버는 원래 강력한 접착력을 가진 제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오히려 접착력이 약한 실패작을 만들고 말았다. 이 접착체는 쉽게 떼었다 붙일 수 있고 끈적거리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프라이는 이걸 찬송가 책갈피용으로 사용해본 뒤 성공에 확신을 갖고 회사를 설득해 포스트잇 개발에 들어갔다.

3M은 1977년부터 포스트잇을 생산했으나 처음에는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M은 포기하지 않고 대기업의 비서와 사무원들에게 직접 포스트잇을 나눠주며 홍보했다.

1980년부터 포스트잇의 편리함을 경험한 비서들의 주문이 밀려들었고 3년 뒤에는 미국 전역, 이듬해에는 캐나다와 유럽에 이어 전 세계로 판매됐다.

포스트잇의 개발은 우연히 이뤄졌지만 그걸 가능하게 했던 3M의 환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실버는 모든 연구 직원은 근무 시간의 15%를 자신이 생각하는 창조적 활동을 위해 쓰라고 한 ‘15%의 원칙’에 따라 실험적인 시간을 보내다가 독특한 접착물을 개발한 것이다. 프라이 역시 이 시간에 창조적인 생각을 해냈다.

직원들의 창의력과 혁신적 사고를 인정해주는 3M의 경영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포스트잇은 지금까지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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