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재판, 위기의 사법부] <2> 널뛰는 1ㆍ2심
2017년 형사사건 10건 중 3건 항소심에서 파기 또는 취소돼
재판부 일방적 판단이 신뢰 훼손… “양형 기준 일관성 높여야”
재판을 직접 받거나 지켜보는 입장에서 사법부에 가장 불신이 생기는 경우는 똑같은 사건을 두고 1ㆍ2ㆍ3심이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리는 때다. 상급심으로 가면서 결정적 증거가 새로 나왔다거나 중요한 사정 변경이 생긴 것이라면 몰라도, 거의 같은 사실 관계를 두고 재판부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이어져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세월호 당일 청와대 문건 공개를 두고 1ㆍ2심이 각각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린 사례다. 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세월호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작성한 문서의 목록을 요구하며 대통령기록관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1심은 세월호 문건 목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맞다면서 비공개를 판정했다. 문제는 1ㆍ2심에서 달라진 사실 관계가 거의 없음에도 결과가 180도 뒤집혔다는 것. 송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시된 게 하나도 없는데 선고 결과가 달라졌다”며 “심지어 심리 때 쟁점화되지 않았던 대통령지정기록물 여부까지 재판부가 나홀로 판단해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서 성추행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도 이와 유사했다. 피해자 김지은씨 진술의 신빙성을 어느 정도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됐던 이 사건은, 이에 대한 1ㆍ2심 재판부 판단이 확연히 엇갈렸다.
같은 법원 안에서도 재판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온 사례도 있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에서 서울고법 형사3부는 국정원장을 회계관계 직원으로 보지 않으며 국고손실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으나, 같은 법원 형사4부는 회계관계 직원으로 보아 유죄를 선고했다. 이밖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판단, 가수 조영남씨가 조수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 사건에서도 1ㆍ2심 판단이 확연히 갈렸다.
법조계 일각에선 뚜렷한 사정없이 1ㆍ2심이 달라지는 경우 사법 안정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새로운 분열을 조장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서울지역의 한 변호사는 “판결이 일정 방향과 기준을 정해줌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데,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튀면서 이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며 “당사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1ㆍ2심 판단의 괴리로 인한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1심 심리강화 및 대등재판부 확대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판단이 달라지는 사건의 대다수는 원심에서 충분한 심리와 검토를 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1심 심리 강화와 동시에 항소심 재판부에도 대등재판부 설치를 확대해 보다 정확한 심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무죄 판단 외에 양형에 대해서도 사건별, 심급별로 일관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같은 죄를 짓고도 재판부 재량에 따라 지나치게 처벌수위가 달라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사건의 경우, 적립된 대법원 판례가 없어 심급별 판단이 엇갈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사법부 신뢰와 연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건 유형이 다양해서 기존 판례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도 많다”며 “이 경우 하급심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