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서밋 의제 분석] <하> 관계 정상화 하>
美 “北 비핵화 확신 들 때까진 제재 완화는 어림도 없다”는 입장
독자 제재 풀어줄 가능성 적어… 금강산 관광 재개 등 합의 예상
“핵을 포기하면 경제 강국이 되도록 도와주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혹은 한결같다. 실제 ‘인민을 잘살게 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욕망도 군더더기 없는 진심으로 보인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자극한 셈이다.
지난해 6월 처음 대좌한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 공동선언 1항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 나가기로 약속하면서 들었던 이유는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염원’이었지만, 북한 인민들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평화보다는 번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핵의 교환 대상은 결국 경제이고 평화(체제 안전 보장)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발판이라는 것이다. ‘하노이 서밋’에서 김 위원장이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을 의제가 관계 정상화와 경제적 비핵화 보상인 이유다.
◇새로운 관계
북한의 대미 핵심 요구는 대북 경제 제재 해제다. 그러나 북한이 핵 보유를 완전히 단념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완화도 어림없다는 게 미국 입장이다. 따라서 북한에게 당장 미국이 지급할 수 있는 착수금은 관계 정상화 조치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일단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합의할 것으로 가장 유력한 초기 비핵화 상응 조치는 연락사무소 개설이다. 이미 평양ㆍ워싱턴에서 부지가 물색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연락사무소 설치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도 포함됐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25일 “민주주의 전파 및 핵 사찰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만큼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만들어지면 미국 입장에서도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인적 왕래나 교류를 늘릴 수 있는 조치들에 양측 의견이 일치할 수도 있다. 지난해 첫 북미 정상회담이 준비될 당시 북미 막후 채널이던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최근 미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연락사무소 개설과 함께 △여행 금지국 해제 △오케스트라 공연 등 문화 교류 개시 △북한 고위 인사 대상 블랙리스트 등재 해제 △북한 대상 테러지원국 지정 철회 등을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정치적 보상으로 꼽았다.
◇밝은 미래
미국이 북한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들의 목록은 길지만, 곧바로 제공 가능한 것은 많지 않다. 대부분 제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센터장이 강연 때 거론한 경제적 인센티브 가운데 인도적 대북 지원이 그나마 북한을 덜 기다리게 할 수 있을 뿐, △북한 은행의 국제 거래 제한 완화 △북한 수출ㆍ수입 통제 완화 등은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상당히 진전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미국의 독자 제재가 느슨해질 때까지 불가피하게 시차(時差)가 발생하는 조치들이다.
특히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을 기대하려면 안보리보다 더 큰 벽인 미국의 독자 제재를 돌파해야 한다. 대북 제재를 법으로 만들어놓은 미국의 경우 행정부가 제재를 건드리려면 의회가 걸어놓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지만, 회의론이 지배적인 현재 미 의회 구도상 쉽지 않은 일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경제 성장의 관건인 민간 대북 투자가 활발해지려면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이 마중물처럼 선행돼야 하는데 가입 거부권을 가진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에스크로 계정을 활용한 북한 개발 분담금 제공 약속도 미국이 변심할지 모른다는 북한의 염려를 해소할 수는 있지만,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미국이 제3자에게 맡겨둔 보상금을 찾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당분간 북한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재를 우회(迂回)하는 대북 타협안으로 거론되는 방안이 철도 연결이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 대상 제재 면제다. 특히 공공 인프라 사업인 철도 연결의 경우 제재 면제가 용이한 데다 북한에게 다자 경협의 물꼬를 터줄 수 있는 만큼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를 무마하는 합의점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의 밝은 미래를 위해 이런저런 상응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할 용의가 있다는 식의 포괄적 문구가 들어갈 수 있으며, 적어도 경제 번영이라는 목표를 가시화할 정도는 되는 구체적 상응 조치 합의가 이뤄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