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댄 최이현 대표 “가치 없는 이윤 의미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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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저 고용을 위한 '착한 기업'을 넘어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경쟁력 있는 사회적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을 격주 월요일 소개합니다.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최이현(38)씨는 평소 ‘드림카’였던 중고 ‘BMW 미니’ 한 대를 샀다. 장애인 할머니가 몰던 차였는데 운 좋게 700파운드(100만원)에 건네 받았다. 영국에 와서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어린이날 ‘셀프 선물’이었다. 반려 동물처럼 애지중지 관리했지만 2년도 못 돼 차는 산산조각 났다. 길가 주차장에 세워 놓았는데 누군가 세게 들이 받고 뺑소니를 쳤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힘들 것”이라고 고개를 흔들었고 앞뒤가 다 구겨진 차를 본 보험사 직원도 “수리비가 2,000만원은 넘을 것”이라며 폐차를 권했다. 최 씨는 아쉬운 마음에 찌그러진 차체를 뒤져 시트만 떼 집으로 가져왔다. 친구들은 위로랍시고 “시트 가죽은 일품”이라고 했다. 그 때는 몰랐다. 그 가죽이 그의 업(業)에 ‘영감’이 될 줄은.
6년 뒤인 2015년 6월 5일.
최 씨는 폐자동차에서 재활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가죽시트와 안전벨트, 에어백으로 가방과 지갑을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전문 사회적 기업 ‘모어댄’을 만들었다. 업사이클링은 리사이클링을 넘어 재활용품에 디자인이나 활용성을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걸 말한다.
모어댄은 요즘 업사이클링 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업체다. 작년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글로벌 지속 가능 발전포럼’에서 모어댄 가방을 직접 들고 설명해 주목을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은 초기 자본금 1억원을 지원하고 홍보와 마케팅 등을 돕는 등 모어댄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과 레드벨벳의 예리 등이 모어댄 제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6년 1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은 2017년 4억원에서 작년 20억원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경기 고양 스타필드와 제주면세점에 직영점이 있고 영국과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15개국에 가방과 지갑을 수출한다. 미국 진출을 목표로 얼마 전 어바인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가방 그 이상의 가치
모어댄(MORETHAN)은 ‘가방 그 이상의 가치’란 뜻이다. 모어댄의 브랜드 컨티뉴(continew)는 ‘continue’와 ‘new’의 합성어로 ‘지속 가능한 새로움’을 추구 한다. 창립일인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모어댄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회사 이름과 브랜드명, 창립일에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가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중고 자동차의 다른 부품과 달리 시트와 안전벨트는 재활용이 어려워 그냥 땅에 묻어 처분해야 한다. 폐기량만 연간 400만톤 이상이다. 최 대표는 “자동차용 가죽은 고온 다습한 환경에 강하고 사람들이 수만 번 앉았다 일어나 길이 잘 들어있는 좋은 가죽”이라며 “이대로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재료”라고 했다. 시트 재활용은 자동차 회사의 매립비용을 줄여주고 환경도 보호하니 ‘일석삼조’다.
폐가죽을 세척해 왁스와 클리너로 냄새를 없앤 뒤 말려주고 가죽 크림까지 바르면 특유의 광택이 되살아난다. ‘다시 태어난’ 가죽은 40년 간 가방을 만든 장인(匠人)에게 보낸다. 모어댄 가방은 폐가죽 수거부터 출시까지 평균 4개월이 걸린다. 최 대표는 “시간이 많이 드는 만큼 더 자신 있게 고객에게 내놓을 수 있다. 제품의 질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가방 하나 가격은 20만원, 지갑은 5만원 수준이다. 그는 “가죽 전문가에 따르면 자동차 가죽이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 가죽보다 네 배 정도 질이 좋다고 한다. 가성비는 아주 뛰어난 셈”이라고 했다.
모어댄은 에어백으로도 가방을 만든다. 에어백은 생명과 직결된 안전 장비라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폐기물은 100% 매립된다. 충돌 시 0.03초만에 부풀어 오르고 충격과 열에 강한 에어백은 최 대표의 눈엔 더 없이 좋은 가방 재료다. 모어댄 사무실에 전시된 에어백 가방에는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의 고유넘버가 그대로 찍혀 있다. 최 대표는 “여름은 가죽 제품이 잘 안 팔리는 비수기다. 에어백 가방은 이 시기에 매출을 회복해 줄 수 있는 유용한 제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대표는 2013년 영국 리즈대학원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말할 때 자동차 배기가스를 거론하면서도 정작 자동차 폐기물이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잘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3년 전 자신의 ‘애마’에서 끄집어냈던 시트를 떠올렸다.
최 대표가 영국에 처음 간 건 2006년 단기 어학연수 때였다. 중고 물품을 거래하고 재활용 소재를 자연스럽게 다시 쓰는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한 뒤 2009년 곧바로 영국으로 향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릴 형편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집세 내는 게 버거워 허덕이다가 친구와 함께 아예 집을 빌려 다시 세를 주는 하숙집 렌트업을 시작했다. 재미가 쏠쏠했다. 최 대표는 “회사 창업 초기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다”고 웃었다.
돈이라는 게 무서웠다. 지갑이 두둑해지는 만큼 계속 더 벌고 싶어졌다. 공부는 뒷전, 렌트업을 확장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금수저 유학파’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내가 이러려고 영국에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마음 한 편이 늘 무거웠다. 최 대표 집 바로 옆에 ‘옥스팜’이 있었다. 옥스팜은 영국에서 결성된 국제 빈민구호단체다. 무심코 지나치던 옥스팜에 들러 한 번은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장사꾼’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잊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주일에 2,3번으로 자원봉사 횟수를 늘리면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깨달았다.
숙박 렌트업에서 손을 떼고 그 동안 모은 돈을 털어 대학원에 등록했다. 3년의 공부 끝에 석사를 마치고 2013년 초 한국으로 돌아올 때 최 대표는 빈털터리였다. 그러나 자동차 시트와 안전벨트를 재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었다.
◇폐차장에서 만난 은인
귀국하자마자 경기도 인근의 폐차장 300여 군데를 돌아다니며 자동차에서 시트를 뜯어냈다. 처음에는 ‘이상한 놈’ 취급을 받았다. 폐차 기계가 그를 덮칠 뻔한 적도 있었다. 우연찮게 ‘은인’을 만났다. 시트 안에 있는 스펀지를 재활용하는 업체 사장이었다. 두 곳의 폐차장으로부터 고정적으로 시트를 공급받고 있던 그 사장은 스펀지를 빼내기 위해 시트를 벗겨내는 일이 고역이었는데 그 일을 자청하는 최 대표를 만난 것이다.
모어댄은 처음엔 유럽 시장을 공략했다. 한국은 아직 폐기물에 대한 선입견이 강해 판매가 쉽지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2016년 2월 우연한 기회에 모바일 상거래 플랫폼인 카카오를 통해 선보인 100개의 제품이 3일 만에 동났다. 최 대표는 “방탄소년단 RM이 착용한 제품이 이 때 팔린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수많은 경진 대회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업을 본격화하기 전에 확실히 검증을 받고 싶었다. 2016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ㆍ교육부ㆍ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ㆍ국방부가 주최한 ‘도전 K-스타트업’이 지금의 모어댄을 만들었다. 6,000개 넘는 업체가 출전해 미션을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슈퍼스타 K’ 형식이었다. 정보기술(IT) 분야의 번뜩이는 창업 아이템 사이에서 모어댄은 결선에 진출해 톱 10안에 들었다. 그는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실제 제품이 있고, 그 제품을 계속 개선해 나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진 대회 후 한 자동차 업체가 앞으로 쭉 재고 가죽을 무상 제공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가치 없는 이윤 의미 없어
모어댄은 창립 초기부터 사회적 가치에 집중했다. 최 대표를 포함한 창립 멤버 3명 중 1명은 경단녀(경력단절여성)다. 유명 가방 회사의 상품기획본부장 출신이지만 아이가 아파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그를 최 대표가 ‘삼고초려’해 모셔왔다. 모어댄은 쭉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 대표를 인터뷰했던 날도 회사에 나와 있는 직원은 한 명뿐이었다. 현재 직원 15명 중 절반 가량이 경단녀, 탈북자다. 지난 해 10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최 대표는 “가치 없는 이윤은 의미가 없다.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 환경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는 회사로 키우고 유지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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