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과거에도 실패한 ‘일괄타결’ 요구
김정은, 미국 협상팀이 이미 거부한 요구사항 고집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두 사람 모두의 오판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2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는 하노이 회담에 관여한 당국자 여섯 명의 말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이전부터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괄타결’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 역시 애초에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내세워 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사항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NYT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사항은 과거 미 행정부에서 북한의 반대에 부딪혔던 내용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한 번에 모든 핵무기와 시설을 포기하면, 미국은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 참모진마저 이 같은 일괄타결 방식의 비핵화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로 보고, 북미회담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신을 능숙한 협상가로 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김 위원장에게 놀아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일부 참모진의 우려에도, 김 위원장이 보낸 ‘아름다운 편지들’을 보여주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오직 김 위원장과의 친밀한 관계에 의존해 과거 실패 사례를 되풀이한 것이다.
잘못된 판단은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핵심 제재조항을 해제해달라는 요구사항에 대해 미국 실무협상팀이 이미 반대 의견을 표했지만,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만큼은 받아줄 수 있다’는 쪽에 모험을 걸었다는 것이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 장관은 “영변만으로 합의하면 곳곳에 핵 프로그램을 숨겨둔 김정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으로 비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내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북한 실무협상팀은 ‘오직 김 위원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영변 핵시설 내부의 어느 시설을 해체할지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었다고 NYT는 전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탑승한 시점까지도 실무협상은 교착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한 자아(ego)가 나쁜 베팅으로 이어졌다”는 게 NYT의 평가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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