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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영화 ‘증인’의 오류… 자폐성 장애인도 거짓말하는 ‘보통 사람’

입력
2019.03.05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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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19> 영화 속 장애인에 대한 시각 

영화 ‘증인’ 스틸컷.
영화 ‘증인’ 스틸컷.

영화 ‘증인’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미 있는 영화다. 영화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달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특히 ‘정상’이라 생각하는 우리들의 시각에서 발달장애인을 ‘비정상’으로 볼 게 아니라는 점, 그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 강조된 부분은 기존의 발달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과 달랐다. 게다가 발달장애인의 감각적인 어려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선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나에게 ‘증인’은 ‘착한 영화’가 아니었다. ‘증인’이 범한 결정적 오류가 크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영화 같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착한 영화라고 극찬하는 ‘증인’. 나는 왜 그에 반기를 드는지 하나씩 짚어 보겠다.

 티 나는 거짓말 

‘증인’은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17세의 자폐를 가진 소녀라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소녀의 증언을 믿는 건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검사뿐이다. 소녀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검사는 “자폐성 장애인은 거짓말을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스토리가 계속해서 진행되기 위한 중심 명제로 작용을 한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나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짓말을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왜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을까? 혹시 내가 지적장애인 아들만 키워봐서 자폐성장애인의 특성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래서 자폐성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물었다. “자폐성장애인은 정말로 거짓말을 못하나요?”. 자폐성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이 “무슨 소리냐!”며 거짓말 잘만 한다고 앞다퉈 댓글을 남긴다.

아하. 그럼 그렇지. 자폐성장애인도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거짓말을 해놓고도 거짓말이 아니라 우기기도 한다. 그런데 눈에 훤히 보인다. 비장애인만큼 정교한 거짓말을 만들어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거짓말로 인한 동시다발적인 상황을 계산해 내는 게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거짓말하는 순간 거짓말인 게 티가 난다.

저녁 밥상에서 당근을 빼고 먹었으면서 당근까지 다 먹었다고 하는 거짓말, 양치질 안 했으면서 양치질 했다고 하는 거짓말, 게임을 세 시간 했으면서 한 시간만 했다고 하는 거짓말, 친구를 꼬집었으면서 안 꼬집었다고 하는 거짓말.

분명 자폐성장애인도 거짓말을 한다. ‘자폐성장애인은 거짓말을 못하기에 소녀의 증언은 무조건 믿을 수 있다’는 영화의 중심 명제는 그 자체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거짓말의 기본 요소 

비장애인인 우리들은 누구나가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거짓말을 해 본 적 없는 비장애인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 본 적 없는 발달장애인은 분명히 있다. 우리 아들만 해도 그렇다. 11년 인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아직 말도 못하는데 거짓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 부분은 중요하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발달장애인이어야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발달장애인의 거짓말은 인지의 문제하고도 연결된다. 거짓말이라는 것도 일종의 창작 능력이다.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상황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창작 능력을 발휘한다. 즉, 거짓말을 한다는 건 그 정도의 인지력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아들의 경우 물티슈를 가져오라고 하면 화장실 불을 끄고 온다. 그래 놓고선 좋다고 헤헤 웃는다. 이런 정도의 이해도를 가진 아들이 거짓말이라는 고도의 능력을 발휘하기엔 무리가 있다.

영화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소녀는 자폐성장애인 중에서도 인지능력이 매우 좋은 아스퍼거 증후군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겨우 돌 지나 “기저귀 갈아주세요”라는 문장으로 처음 말을 하고, 두 살 때는 한글을 줄줄 읽었다. 상황파악 능력도 뛰어나고, 자기 성찰을 통한 삶의 목표까지 확실하다.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거짓말을 잘 할 수 있는 기본요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착한 장애인 설정이 불편한 이유 

사실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자폐성장애인은 거짓말을 못하는 착한 사람’으로 인식할 것이고, 내 아들이 지적장애인지 자폐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들도 ‘착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거리에서의 시선도 한층 더 따뜻해질지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진실을 밝히는 건 영화가 보여주려 애쓴 ‘착한 장애인’ 설정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소녀는 ‘착함의 정수’ 같은 인물이다. 소녀가 너무 착해서 못된 변호사도 그에 감응을 받아 변화된다. 착한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은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든다.

그런데 보자. 장애인은 정말 착할까? 특히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와 같은 행동 양상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은 그렇게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기만 할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와 똑같다. 대부분의 경우 착하지만 얼마든지 못되게 행동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좋기도 나쁘기도 할 수 있는, 그냥 나와 같은 너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발달장애인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람’으로서의 본질까지 훼손해 버렸다. 착할뿐더러 거짓말도 못하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발달장애인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존재’다.

 엑스맨이 되어버린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에 특별함을 부여해 버린 것. 영화 ‘증인’이 범한 가장 큰 오류다. 이 오류는 감각의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발달장애인의 감각 문제를 세상에 알려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중에서도 소머즈급 청력과 알파고급 시력을 가진 특별한 소수의 능력을 캐릭터에 입혀 버렸다. 이제 발달장애인은 천사같이 착하기만 한데 특별한 능력까지 갖춘 초능력자가 되어 버렸다.

극중 변호사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씨는 언론인터뷰에서 “발달장애인이 갖고 있는 결핍이 일반인에게는 없는 어떤 극대화된 장점을 이끌어낸다고 본다”며 “인간이란 정말 놀랍다. 어느 한 부분에 결핍이 오면 다른 한 부분이 그것을 보완해준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엑스맨도 다 발달장애인이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영화를 찍고 나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엑스맨과 같은 ‘초능력자’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정우성씨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발달장애인은 흔치 않다. 평범한 발달장애인은 ‘결핍’을 대체할 보완적 특성이 나타나지도 않고 ‘엑스맨’ 같은 특별한 능력도 없다. 비장애인 중에도 ‘천재’는 소수에 불과하듯 발달장애인 중에도 ‘특별한 능력’은 소수만 갖고 있다.

11년 동안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한 대부분의 문제는 아들이 세상 속에서 ‘나와 다른 존재’, 즉 ‘사람’이기에 앞서 ‘특별한 장애인’으로 취급(?)받기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런데 영화 ‘증인’에선 그러한 장애 인식을 더욱 공고히 했다.

진정 발달장애인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발달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단지 사람이어야 했다. 단지 장애가 있을 뿐인. 모두가 ‘착한 영화’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 영화가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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