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73만대였던 국내 중고차 거래 대수는 2018년 377만대로 늘었다. 10년도 안 돼 연간 거래되는 중고차 수가 100만대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신차 판매량은 연 145만~155만대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다. 지금 추세라면 연간 거래량 400만대 돌파가 머지 않았다는 관측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중고차 시장의 주된 성장 동력은 온라인 시장 확대다. 2001년부터 국내 중고차 온라인 거래를 선도적으로 시작한 ‘SK엔카’는 2018년까지 중고차 누적 등록대수가 800만대를 넘어섰다. 상시 판매 중인 중고차 대수도 10만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KB차차차, 현대캐피탈 등과 같은 캐피탈사도 온라인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통해 차량 판매 및 구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자사 금융 상품을 연계한 서비스를 앞세워 급성장하고 있다. KB차차차의 경우 2016년 1만5,247대에 불과했던 중고차 등록 건수가 이듬해인 2017년 6만5,003대, 지난해엔 10만9,344대로 급증했다. 젊은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고차 모바일 플랫폼 ‘첫차’는 지난해 말 누적 다운로드 280만건을 기록하고 누적 거래량 5,000억원을 달성했다.
◇‘레몬마켓’ 중고차 시장의 변신
중고차 시장의 급성장 비결은 뭘까. 답은 ‘정보 비대칭의 해결’에 있다. 정보 비대칭이란 시장에 참여한 거래 당사자 간에 보유 정보에 차이가 있어 어느 한 편(정보가 적은 쪽)이 불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를 뜻한다. 중고차 시장이라면 상품(중고차)에 대한 정보가 어두운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여기에 해당한다.
10년 전만 해도 중고차 시장에서는 정보가 빈약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숱한 사기가 성행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허위 매물’이다. 실제로는 없으나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사이트에 올라오는 ‘가짜 중고차’를 뜻하는 말로, 미끼처럼 소비자를 낚는 데 사용된다고 해서 ‘미끼 매물’로 불리기도 한다. 사기꾼들은 이런 허위 매물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린 뒤 이를 보고 방문한 소비자에게 다른 차를 비싸게 강매하는 수법을 자주 쓴다. 사고ㆍ보험 이력 숨기기, 주행 거리 조작 등도 중고차 업계에서 횡행하던 사기 행위였다.
이런 탓에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에게 엄청난 장벽이 존재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곳이었다. 중고차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분석한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레몬시장 이론’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파는 사람은 중고차의 결함을 잘 알고 있지만 사는 사람은 정보가 부족해 비싸게 속아 사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 이론의 요체다. 여기서 레몬은 겉만 멀쩡한 물건, 우리 시쳇말로는 ‘빛 좋은 개살구’를 뜻한다.
◇중고차 시장은 허위매물과 전쟁 중
국내 중고차 시장의 급성장은 이러한 ‘레몬’들, 외양은 번드르르한 불량품이 빠르게 퇴출되고 있는 현실과 관련 깊다.
실제 중고차 기업들은 허위 매물 잡아내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허위 매물이 중고차 유통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여겨서다. 아울러 허위 매물 방지 시스템 구축을 통해 경쟁업체와 차별화를 추구하고 자사 신뢰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업들의 계산도 작용했다.
허위 매물 예방에 가장 먼저 뛰어든 기업은 국내 최대 중고차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는 SK엔카(현 SK엔카닷컴)다. SK엔카는 2007년 업체 최초로 허위 매물 단속 프로그램 ‘클린엔카’를 도입했다. 클린엔카는 허위 매물 신고제, 삼진아웃제 등을 운영한다. 허위 매물 신고제는 매물 정보가 실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소비자가 ‘신고’ 버튼을 누르면 해당 중개업체에 해당 매물 정보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삼진아웃제는 3회 이상 허위 매물로 신고된 차량의 등록정보를 자동 삭제하거나, 허위 매물을 3대 이상 등록한 업체는 한 달간 매물을 새로 올릴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KB캐피탈의 중고차 거래 플랫폼인 ‘KB차차차’도 회원인 중고차 매매업체가 매물정보를 입력할 때 사전 설계된 알고리즘을 통해 허위 매물을 걸러낸다. KB차차차는 카이스트 연구진(신진우ㆍ한동수 교수팀)과 협업해 인공지능(AI) 딥러닝 기법을 활용한 시세 모형을 개발해 적용했다. 이를 통해 일반 시세보다 낮은 허위 매물이나 터무니없이 비싼 매물을 차단하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시세를 제공하고 있다.
중고차 1만630대를 전시하는 국내 최대 자동차 매매단지 ‘엠파크’도 시세 정보 제공에 도전장을 던졌다. 엠파크는 실거래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 개발한 ‘시세산출엔진’이 고객이 찾는 중고차의 최저가부터 최고가를 보여준다. 다른 중고차 사이트의 매물가격 교차 검증에도 활용할 수 있다.
블록체인과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해 중고차 성능 조작이나 사기를 예방하고 허위 매물을 차단하는 중고차 관리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서울시는 연간 1만여 대의 중고차가 거래되는 장안평자동차매매시장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달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중고차 조합에서 쓰는 매매 시스템과 서울시 블록체인 플랫폼을 연계해 소유권 이전, 중고차 성능ㆍ상태 점검기록부, 주행거리, 사고 정보 등의 위변조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매입 정보 등록, 성능 정보 등록, 차량 정보 조회, 성능 정보 조회, 매도 정보 등록 등 블록체인화한 데이터는 서울시 서버 4대에 동시 저장돼 조작이 불가능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중고차 업체들이 치열한 시장 정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소비자 스스로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허위 매물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싼 값에 속지 않는 것이다. 허위 매물의 경우 정상 매물보다 200만~500만원 정도 싸고, 차 상태는 ‘무사고’나 성능에 문제없는 ‘단순사고’로 적혀 있고, 주행거리는 연식에 비해 짧게 표시돼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실제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차량이 저렴하게 나올 수도 있지만 가격이 너무 싸다면 일단 사고, 고장 등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20~30대의 매물을 올린 딜러들도 요주의 대상이다. 딜러 한 명이 이 정도로 많은 매물을 보유하기도 힘들고 매매단지에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딜러 매물을 판매 대행해 준다고 하더라도 한 명이 수십 대를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허위 매물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사기꾼일 가능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차량 사진을 꼼꼼히 보는 것도 방법이다. 허위 매물 사진은 다른 매물 사진을 가져다 넣는 경우가 대다수다. 글로 설명해놓은 차량 정보와 사진 속 차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일단 허위 매물로 봐야 한다. 다량의 허위 매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실수’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딜러를 만나러 가기 전 성능ㆍ상태 점검기록부와 차량등록증을 받아 확인하는 것도 좋다. 차량 등록 번호를 통해 국토교통부 ‘자동차36’5나 보험개발원의 ‘자동차 사고이력정보 서비스(카히스토리)’로 차 상태나 사고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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