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짙은 연필심 냄새가 난다. 지우개인가 싶은 고무 냄새도 코끝을 살짝 스친다. 누군가 방금 드로잉을 끝냈나 보다, 상상하는 사이 냄새를 쫓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프랑스 작가 리에르 르탕의 공간에 들어선다. 이번엔 쿰쿰한 월계수 향이다. 전시 공간을 옮겨 다닐 때마다 냄새가 달라진다. 붉은 벨벳으로 장식한 공간에선 중동 향신료 향이, 형광색 일러스트가 가득한 공간에선 톡 쏘는 시트러스 향이 난다. 국내외 참여 작가들의 공간을 저마다 다른 냄새로 채운 디뮤지엄의 ‘아이드로우(I draw),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전시 이야기다.
# “퍽, 퍽, 퍽.” 전시장 한 쪽에서 물체가 벽에 부딪히는 독특한 소음이 난다. 관람객들이 숨을 죽이고 소음의 출처를 찾는다. 조은지 작가가 흰 벽을 향해 진흙을 내던지는 소리다. 피아니스트 김혜영씨가 흙이 벽을 충격하는 순간에 맞춰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피아노엔 이 퍼포먼스를 위한 악보가 놓여 있다. 피터 간이 작곡한 ‘땅(Dtang)’이다. 일민미술관의 ‘불멸사랑’ 전시 속 ‘땅, 땅, 땅, 흙이 말했다’ 작품 이야기다.
조용히 작품에만 집중하는 정적인 전시 문법을 넘어서는 미술관들의 실험이 잇따르고 있다.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 공감각을 적극 활용해 관람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전시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마주한 미술관들의 생존 전략이다.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은 ‘아이드로우…’ 전시를 위해 작가, 작품의 특색에 맞춰 향기를 디자인했다. 코스메틱 브랜드 ‘템버린즈’의 조향팀과 협업을 통해서다. 조향사 3명이 일러스트레이션, 오브제, 애니메이션 등 350여점의 작품을 본 뒤 떠오른 영감으로 향기를 만들었다. “냄새와 향기로 관람객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게 조향팀의 설명이다. 오래된 책으로 가득한 작가의 방, 차가운 금속, 몽환적 일러스트레이션 등이 향을 입고 시각으로 전달되면 눈으로만 볼 때보다 집중도가 올라간다. 냄새가 기억과 감정을 보다 예리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향기가 날아가거나 관람객의 냄새와 섞이지 않도록 전시 담당자들이 바닥, 벽, 커튼 등에 수시로 향을 뿌린다.
전시에서 작품을 만지는 건 오랜 금기다. ‘만지지 마시오’라고 경고하는 대신, 관람객의 촉각을 적극 활용하는 체험형 전시도 유행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1길컬쳐스페이스에서 지난 3일까지 열린 ‘푸릇푸릇뮤지엄’ 전시는 관람객이 만지거나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내놓았다.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커피사회’ 전시에선 발을 담글 수 있는 ‘원두 풀’이 인기를 끌었다. 두 전시는 흥행에 성공했다. 두 전시가 각각 5개월, 3개월 간 진행되는 동안 쌓인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7,771개, 1만4,000개에 달한다.
전시에 음악과 퍼포먼스를 곁들이는 기획은 이제 ‘기본’이 됐다. 제주 성산에서 열리는 ‘빛의 벙커: 클림트’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을 다양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영상 이미지로 재구성해 보여 주는 미디어아트 전시다. 매일 평균 2,000명에 가까운 관람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세계적 디자이너인 이광호 작가는 서울 종로구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힙합 듀오 XXX와 협업 전시를 열고 있고, 백현진 작가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전시에서 노래와 몸짓을 곁들여 즉석에서 회화를 그리는 ‘영원한 봄’ 퍼포먼스를 보여 준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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