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수록 인물 4,857명 중
만 20세도 안돼 투옥된 독립유공자 60여명 확인
그 어린 독립투사들의 초상
소녀는 왼쪽 가슴에 큼지막한 이름표를 붙이고 사진기 앞에 섰다. 난생 처음 끌려온 형무소, 각오는 했으나 일본 경찰과 간수들의 폭압적 언행 앞에서 위축되지 않기가 쉽지 않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말없이 사진기를 응시하던 소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몸뚱이도 모자라 정신까지 구금하려 드는 일제에 맞서 댕기머리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그것뿐이었다.
소은명. 1920년 3월 1일 3ㆍ1운동 1주년을 기억하기 위해 서울 배화여고 뒷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는 두 살 위 언니 은숙, 그리고 다른 22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돼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갔다. 그 해 4월 5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다음날 풀려날 때까지 한 달여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선고일 기준 소은명의 나이는 만 14세10개월이었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은 일제가 독립운동가 등 요주의 인물을 통제, 관리하기 위해 만든 감시대상인물카드 중에서 만 20세 미만의 나이로 투옥된 독립유공자 60여명의 카드를 찾아냈다.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공훈록과 6,264장의 인물카드를 일일이 대조해 독립유공자만을 특정한 후 카드 제작 날짜 또는 선고 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계산해 얻은 결과다. 소은명은 이 중 최연소 인물이다.
요즘 같았으면 입시 준비에 매달리거나 힙합과 유튜브에 빠져 있을 나이에 이들은 자주독립을 꿈꾸었고 일제에 항거했다. 그 대가는 무차별적 폭력과 체포, 구금, 모진 고문이었다. 투옥 초기 형무소 어느 구석에서 진행된 사진 촬영은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시작을 뜻했다. 형언하지 못할 비인간적인 폭력 앞에서 어느 누가 태연할 수 있을까. 그러나 두려움이 저항의식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사진기를 응시하는 이들의 눈빛만은 그 어떤 거물급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당당했다.
일제강점기 어린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1919년 3ㆍ1운동을 계기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사진 속 인물들 역시 3ㆍ1운동을 전파하거나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반대해 동맹휴학을 주동하고, 독서회 등 비밀 조직을 만들어 항일 정신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검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20년대부터 광복 직전까지 일제는 이들에게 보안법과 치안유지법, 출판법 위반 등을 죄목으로 씌워 탄압했다.
3ㆍ1운동이라는 민족적 저항을 경험한 후 일제의 억압이 견고해지면서 나이 어린 학생이라도 항일 투쟁을 벌이다 끌려가면 실형을 면하기 어려웠다. 집행유예로 풀려나더라도 정식 선고가 내려지기 전까지는 구금 상태로 취조와 고문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에 굴복하지 않고 출소 이후 독립투쟁을 이어가다 수차례 더 옥고를 치른 이들도 있다. 1927년 만 18세의 나이로 식민지 교육의 부당성을 알리는 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된 이석은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2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에도 비밀 결사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벌이다 또다시 체포돼 4년여간 취조를 받았고, 2년 6개월의 옥고를 더 치렀다. 저항 시인 이육사의 시신을 거둔 것으로 잘 알려진 이병희 역시 인물카드에 수록될 당시 만 19세2개월이었다. 노동운동을 통해 항일 투쟁을 벌이다 투옥된 그는 출옥 후 의열단에 가입했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또다시 체포, 수감되고 만다. 이육사를 만난 것도 이 때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보관 중인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총 4,857명의 신상이 수록돼 있다. 단순 사회, 경제사범을 포함한 숫자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카드에 수록된 인물 중 독립운동과 유관한 인물이 몇 명인지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뷰엔팀은 카드에 기재된 인적 사항을 공훈록과 대조해 독립유공자 730여명의 신상 카드를 확인했다. 그러나 동일인으로 추정되지만 공훈록과 카드의 인적 사항이 다르거나 누락된 경우가 적지 않고 아직 공훈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인물도 있어 실제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20세 미만의 어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현황 파악 역시 비슷한 상황인 만큼 기사에서 소개한 인물들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제의 폭압적 만행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행되었음을 고발하고 선열들의 독립 의지를 기리기 위해 제한적으로나마 이들 어린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선별해 싣는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자료 제공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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