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ㆍ철광석 매장량 세계 최대, 오염물질 배출 요주의 대상
한때 활기 넘쳤지만 을씨년… “젊은층 상당수 떠나” 곳곳 빈집
“우리 마을은 이제 지도에도 없어요. 저 공장 때문에.”
8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 치엔안(迁安)에서 만난 60대 주민 리우(刘ㆍ여)씨는 동네 공기가 어떠냐고 묻자 “가족들 모두가 병에 걸렸고 폐암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웃들도 많다”며 이렇게 답했다. 치엔안은 철강 공장이 몰려있는 중국의 대표적 산업단지다. 베이징(北京)에서 동쪽으로 230㎞가량 떨어져 있다.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는 그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공기가 오염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딴 생각은 없다”면서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 해도 공장에서 보조금을 안 주니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애를 태웠다.
리우 씨는 마침 골목 한 켠에 양동이를 늘어놓고 소형 급수차에서 물을 받고 있었다. 지나가던 50대 주민 저우(周ㆍ여)씨는 “동네 지하수로 밥을 하면 맛이 너무 이상해서 도저히 못 먹는다”며 “공장에서 공짜로 물을 배달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마실 물도 없다”고 거들었다. 먼발치에 우뚝 솟아있는 공장 굴뚝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다. 그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반갑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40~50대 젊은 사람들이 폐암으로 많이 죽었고 오염 때문에 우리가 못 살게 됐다”고 말했다.
치엔안의 철강 공장은 1958년 처음 조성돼 중국 고도성장의 엔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마을 앞 대형 공장은 2000년 전후에 생겼다. 그 덕에 한때 3,500명이 모여 살던 부유한 곳이다. 중국의 다른 시골마을과 달리 동네 곳곳에는 꽤 큼직한 2, 3층짜리 주택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치엔안 전체로 보면 억만장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마을 인구는 200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뗄수록 깨진 유리창과 자물쇠가 잠겨 굳게 닫힌 철문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한낮의 따스한 기운에 몸은 나른했지만 스산한 분위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긴 사람 그림자를 찾기 어려워 중국인들은 귀신마을(鬼村)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폐휴지를 줍다가 바닥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돈을 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60대 주민 리우(刘)씨는 “오염이 너무 심해 자동차가 고장 날 정도였다”며 “10만 위안(약 1,700만원)이 넘는 차는 800위안(약 13만6,000원), 10만 위안이 안되면 500위안(약 8만5,000원)의 보조금을 주는 게 고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갈수록 공기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며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는 “공장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 바꿔가면서 생활하기에 한결 나아졌다”며 “예전에는 죄다 먼지가 묻는 통에 밖에서 빨래를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중앙에서는 늘 좋은 정책을 내놓지만 지방에서는 잘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쩔 수 없는 일도 많다”며 은근히 불만을 내비쳤다.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모처럼 인기척이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공장에 배달할 점심식사 반찬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동부 연안 장쑤(江蘇)성에서 지난해 7월 이곳으로 일하러 왔다는 진(秦)씨는 “고향에 비하면 공기가 많이 안 좋지만 그래도 견딜 만하다”면서 “주민들이 대부분 떠나다 보니 비어있는 집이 적지 않아 공장에서 무료로 제공한 숙소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철강 공장과 마주한 마을 어귀의 허름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작업복을 입은 인부 여러 명이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국수를 먹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공장 사정을 물었다가 고개를 휙 돌리며 “왜 그러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잔뜩 경계하는 시선이 또렷했다. 밖으로 나왔다. 공장 쪽으로 가보려 했더니 길 건너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더 이상 접근하는 건 무리였다.
돌연 역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바퀴 돌고 나와보니 느낌이 달랐다. 저 멀리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굴뚝 끝 주둥이에서 약간 노란빛이 감도는 듯했다.
탕산을 찾은 건 3월 한반도를 강타한 미세먼지와의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베이징을 출발해 2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렸다. 베이징과 탕산, 그리고 탕산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톈진(天津)까지 3개 도시를 잇는 삼각 벨트는 중국 북부지역에서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톨게이트를 통과해 탕산 시내 방향으로 방향을 틀자 이내 사방의 풍경이 희뿌옇게 바뀌었다. 중심부로 향하는 112번 국도 왼편으로 대략 1, 2㎞ 거리에 띄엄띄엄 공장의 기다란 굴뚝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차에서 내려 숨을 들이쉬었다. 목안이 텁텁했다. 휴대폰을 꺼내 공기질 지수(AQI)를 살폈더니 152를 가리켰다. 나쁨 수준이다. 같은 시간 베이징은 114를 기록 중이었다. 차로 15분 거리의 펑룬(豊潤)으로 향했다. 대형 시멘트 공장이 자리잡은 곳이다. AQI는 어느새 190으로 치솟았다. 아예 굴뚝이 없고 전기로 가동하는 현대화된 공장도 적지 않았지만, 도로변 곳곳에는 표면이 부식돼 한눈에 봐도 낡은 공장들이 흉물스럽게 반겼다.
공장을 지나칠 때면 굴뚝부터 쳐다봤다. 이상했다. 하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를 뿐 매연을 내뿜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동을 중단한 공장이 더 많았다.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환경감독관이 상주하며 눈을 부릅뜨고 있다고 한다. 수도 베이징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본보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지금은 중국 최대 연례정치 행사인 양회가 한창인 시기다. 하지만 공기는 여전히 탁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늘에서 검은 분진이 떨어졌다는 곳이다.
탕산은 석탄과 철광석 매장량이 세계 최대 규모다. 석탄을 연료로 철강을 제련하고 시멘트를 생산하며 도시 규모를 키웠다. 서태후(西太后) 집권 시절 중국 최초의 기차를 만들고, 31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허버트 후버가 이곳 탄광의 책임자로 근무했을 정도다. 이후 중국 역사에 근대화의 요람이자 중화학공업의 발원지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석탄, 철광, 시멘트 모두 엄청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산업이어서 당시의 명성은 오명으로 바뀌었다. 한중 양국이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배출원인을 추적하는 공동연구 대상으로 지난해 베이징 등 4개 도시를 선정한 데 이어 올해 탕산을 추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봐야 하는 요주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탕산 시내를 거쳐 치엔안으로 향했다. 완만한 언덕을 꼬불꼬불 넘어가는 102번 국도 양편으로 누런 색의 민둥산 언덕이 펼쳐졌다. 그 사이사이로 철강과 화학공장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철광석을 캐는 게 아니라 노천에서 주워담을 정도로 철이 풍부한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도 공장 주변은 잠잠했다. 간간이 인부들이 오갈 뿐 특유의 굉음이나 활기찬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탕산은 중국 난방기간인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철강 업체를 오염물질 발생 수준별로 4개 등급으로 나눠 차등해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상태다. 이에 약 30%를 감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것을 의식해 어쨌든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탕산은 공기질을 개선하고 있는데 중국 서쪽지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때문에 우리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정서가 적지 않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으로서는 좀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언덕길이 끝날 즈음 다시 길이 넓어지더니 길가에는 꼬리를 잇는 트럭 행렬이 줄이어 늘어서 있었다. 당분간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족히 수㎞가 돼 보이는 담벼락이 빙 둘러쳐 있어 마치 공장을 감싸는 모양새였다. 취재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 탕산 톨게이트 근처에 도착하자 AQI는 149를 찍었다. 여전히 나쁨 수준이다. 낮에 만났던 마을 주민의 하소연이 오는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공장은 계속 돌아가야겠죠.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사람을 생각하면 환경오염도 함께 해결해줘야 하지 않나요.”
탕산=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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