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직원들도 임금 체불 호소, 원청업체도 피해
인도네시아 한인 봉제업체 ㈜에스카베(SKB) 사장의 야반도주 및 임금 체불 사건(한국일보 7일자 1, 2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심과 노력에 현지 주무 장관이 감사를 표했다. 한국 대사관과 한인 기업인들은 주말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해법을 모색했고, 동포 사회는 “한국 이미지에 먹칠을 하며 묻힐 뻔한 사건을 공론화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김창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와 송창근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KOCHAM) 회장 등은 9일 KOCHAM 회의실에서 SKB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송 회장은 “1월 29일 ‘한국 사람이 잠적하고 월급을 받지 못했다, 도와달라’라는 57초짜리 동영상을 무하마드 하니프 다키리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후 우리 대사관에 알리고, 다섯 차례에 걸쳐 인도네시아 노동부 등과 면담을 이어갔다”라며 “전날(8일) 무하마드 장관에게 ‘한국 정부까지 나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전화했더니 ‘고맙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본보 보도가 나온 7일 조국 민정수석에게 “인도네시아 당국과 적극 공조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날 회사 측 대표로 참석한 SKB의 한국인 중간간부 A씨는 “한국인 직원 5명도 5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라며 “세 명은 방법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갔고, 한 명은 현지에서 빚을 내 생활하다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사장 김모(68)씨는 달아났지만 (저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남아있다”라며 “현지 노동자들이 위에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라 한국인 직원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작년 10월 사장이 시키는 대로 부채 변제 등에 먼저 자금 집행을 했고, 월급은 대출을 받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사장이 말해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사건 관련 1차 면담 때 회사 측 관계자가 불참해 역정을 냈던 무하마드 장관이 다음 면담에 참석한 A씨를 회사 측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고, 실제 A씨가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게 주인도네시아한국대사관 얘기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SKB 사태의 파장이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의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김창범 대사는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인도네시아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 2,200여개 우리 기업들을 봐서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1시간가량 회의 뒤 김 대사는 “노동자들에게 체불 임금을 돌려주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했다. KOCHAM은 SKB 전 소유주가 잠적한 사장 김씨를 상대로 현지 법원에 제기한 주식반환청구 소송이 마무리되는 14일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판결이 늦어지거나 전 소유주가 승소하면 일이 더 꼬일 수도 있다.
SKB는 오랫동안 자금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도 부담이었겠지만, 꾸준히 주문이 들어온 걸 감안하면 방만하고 부실한 경영이 더 큰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원청업체인 S사와 H사도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KOCHAM에 따르면 지난해 SKB를 비롯해 3,000명 이상 규모의 봉제업체 3곳이 문을 닫았다. 안창섭 KOCHAM 부회장은 “두 곳은 SKB와 달리 잘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브카시 소재 봉제업체 SKB 사장 김씨가 지난해 10월 직원 3,000여명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잠적하면서 불거졌다. 무하마드 장관이 지난달 27일 ‘2019 코리안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 연사로 나서 “한두 명이 물을 흐려서 SKB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함께 성장하자(Together We Grow)’는 주제처럼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할 정도로 파문이 일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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