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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먼지분쟁, 유럽 ‘산성비 협약’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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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먼지분쟁, 유럽 ‘산성비 협약’에 답 있다

입력
2019.03.11 04:40
수정
2019.03.11 07: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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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영ㆍ독發 산성비, 스웨덴 문제제기에 11개국 공동연구 

 1979년 31개국 ‘장거리 대기오염 협약’… 15년 만에 산성비 퇴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 6일 강원 춘천시 도심 하늘이 온통 뿌옇다. 춘천=연합뉴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 6일 강원 춘천시 도심 하늘이 온통 뿌옇다. 춘천=연합뉴스

한중간 미세먼지 갈등 해법으로 1970년대 영국, 서독,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럽 대륙의 산성비 문제를 해결한 ‘국제협약(CLRTAP)’ 모델이 국제사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 블룸버그,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등 해외 주요언론은 지난 주말 이후 미세먼지를 둘러싼 한중 대립상황과 함께 이 문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집중 보도했다. 이들은 또 문 대통령이 인공강우 실험을 제안한 것에 주목, 두 나라가 과학적이고 호혜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 수 있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미세먼지 갈등에서 한국과 중국이 한쪽의 일방적 책임만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인내와 조정을 통한 해법 마련을 주문했다. 조석연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유럽식 해법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대륙을 이 잡듯 뒤져서 한국 내 영향력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중국을 설득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협약을 통해 배출량을 ‘함께’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유럽 모델은 전세계에서 불거진 국가간 대기오염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한 유일한 사례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주관해 1979년 체결한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인데, 관련 국가들은 4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매년 대기오염 물질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감축방법 및 비용 분담을 논의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CLRTAP 협약 이후 유럽 국경간 대기오염 감소.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CLRTAP 협약 이후 유럽 국경간 대기오염 감소. 송정근 기자

유럽이 대기오염 협약을 추진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미세하게 따지지 않고 큰 틀에서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니 가능해졌다. 협약의 출발은 1950년대 북유럽 국가 호수들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숲이 사라지는 재앙에서 비롯됐다. 1967년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테 오덴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아황산가스가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197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과 서독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이 스칸디나비아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두 나라는 지금의 중국처럼 연구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이에 스웨덴이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산성비를 국제 이슈로 제기하는 등 피해 당사국의 부단한 노력이 이어졌다. 과학적 검증과 국제여론의 도움에 힘입어 영국과 서독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 OECD 주도하에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가 축적되면서 UNECE 차원의 협력 방안이 논의됐고, 1979년 UNECE 회원국 34개 중 31개국이 CLRTAP에 서명했다.

협약이 조인되자마자 ‘청정대륙’이 된 건 아니지만, 유럽대륙은 15년 안에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산성비의 원인인 이산화황 배출량은 오염이 가장 심했던 체코, 독일, 폴란드에서 모두 감소했다. 특히 독일 인근 지역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1989년 142만톤에서 1996년 59만톤으로 크게 줄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유럽지역 오존농도의 초과량 변화. 송정근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유럽지역 오존농도의 초과량 변화. 송정근기자

산성비 제어에 성공하면서 CLRTAP는 단계적으로 협약 대상을 넓혀 현재까지 8개 의정서가 채택됐다. 1984년 제네바의정서에서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에 대한 자료수집 및 정보공유 합의가 이뤄졌으며, 이듬해 체결된 헬싱키의정서에선 오염물질(이황화탄소)의 방출 및 국경이동을 30% 감축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1999년에는 황, 질소산화물,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각 오염물질에 대한 국가별 배출 감축 공약이 포함됐고, 2012년 개정판엔 한중간 갈등의 핵심인 초미세먼지(PM 2.5)까지 관리 대상에 들어갔다.

조석연 교수는 “CLRTAP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오염물질을 얼마나 주고 받느냐 따지는 것보단 함께 줄여나가는 데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과학적 검증이 동반되긴 했지만,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인식 자체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 협약이 유럽감시평가프로그램(EMEP), 협약이행위원회 등 촘촘한 감시체계 도입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사회의 눈치 때문에라도 각국이 오염물질 통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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