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평등하다.” 환경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피해를 준다는 사회학계 거장 울리히 벡의 진단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환경오염 피해가 확연하게 갈린다는 연구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미세먼지를 ‘만드는 인종’과 ‘피해 보는 인종’이 따로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미국국립과학원(PNA)은 1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초미세먼지(PM2.5) 유발 책임 대비, 백인들은 17% 피해를 덜 보지만 흑인과 히스패닉은 오히려 각각 56%, 63% 더 노출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인종별로 소비ㆍ운전ㆍ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발생 책임’과 ‘실제 피해’ 정도를 비교한 결과다.
인종에 따른 ‘오염 불평등’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렇다. 백인 집단은 소비 규모가 큰 탓에 타인종 대비 초미세먼지를 더 많이 만든다.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은 대기 오염이 열악한 지역에 더 많이 거주한다. 결국 인종별 경제력 차이에서 비롯한 문제인 것이다.
예컨대 비교적 소비 수준이 낮은 히스패닉은 평균 대비 미세먼지를 31% 덜 만들지만, 거주 지역에 따라 평균보다 미세먼지에 12% 더 노출된 채 살아간다. 노출변수 ‘1.12’(1+0.12)를 유발변수 ‘0.69’(1-0.31)로 나누어 계산하면 ‘오염 불평등’ 수치가 약 ‘1.63’로 나와, 히스패닉들은 책임에 비해 63% 더 피해를 본다는 결론이 나온다.
AP통신은 연구 결과를 전하면서 미국에서도 “미세먼지는 심장 및 호흡기 질환 등으로 매년 약 10만명의 사망자를 내는 심각한 환경 문제”라고 설명했다. 텍사스 서던 대학의 로버트 블라드 교수(사회학)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백인들이 오염물질을 가난한 사람과 유색 인종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미세먼지 불평등을 보여주는 연구는 많다. 올 2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지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집단이 백인 집단에 비해 승용차ㆍ버스 등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에 약 40% 더 노출된다는 ‘참여 과학자 모임(UCS)’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역시 소득 수준에 따른 거주지 문제가 핵심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주민은 샌프란시스코 주민보다 2.5배 더 오염물질에 노출됐다. 또한 역설적으로 개인 소유 차량이 없는 주민이 평균치 대비 19% 더 오염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교통이 밀집된 도시 한 가운데 사는 경향이 있는 탓이었다.
지난해 2월에도 이와 유사한 미국환경보호청(EPA)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유공장 등 오염물질 배출 시설의 반경 4㎞ 내 지역을 살펴봤더니 미국 50개주 중 46개주에서 소수 인종 거주지가 대기 오염에 더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흑인은 평균보다 1.5배 가량 미세먼지에 더 노출됐는데, 경제력에 따른 차이를 통제하고 계산해도 ‘인종’ 차이만으로 노출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이 위계적인만큼, 미세먼지도 그렇다‘는 슬픈 결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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