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 ‘활’의 모든 것
※ 공연 소품을 눈 여겨 본 적 있나요? ‘공연 무대에서 쓰이는 작은 도구’를 뜻하지만,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품으로 공연을 읽어 보는 ‘그 무대 그 소품’이 격주 목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 옵니다. 한국일보>
좋은 현악기와 좋은 활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연주자들은 당연히 악기를 고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악기 본체가 중요한 건 두말 할 것 없지만, 악기 소리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건 활이다. 활은 그저 ‘조연’이 아니다.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옷을 갈아 입듯, 연주자들은 활을 신중하게 고른다. 악기와 궁합이 잘 맞는 활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기도 한다.
과르니에리, 스트라디바리 가문 등 악기 명가는 이탈리아에 많다. 활 명가를 찾는다면 프랑스로 가야 한다. 현대 활의 초석을 닦아 ‘활의 스트라디바리’로 불리는 프랑소와 투르트(1748~1835)가 프랑스인이다. 그가 활 제작에 사용한 페르남부코 나무는 현재도 활의 원재료로 가장 널리 쓰인다. 브라질에서 주로 자라는 페르남부코 나무는 목질이 단단해 활이 좀처럼 휘거나 변형되지 않는다. 동화 ‘재크와 콩나무’의 그 나무이기도 하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대개 2~4 자루의 활을 가지고 다닌다. ‘곡’에 따라 활을 바꿔 쓰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조형준(32),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30)씨도 세 자루씩의 활을 쓴다. 현악 4중주단인 아벨콰르텟 멤버로,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1위, 2016년 제네바 국제콩쿠르 3위에 오른 인정 받은 연주자들이다. 제네바 콩쿠르 상금으로 둘은 ‘바로크 활’을 샀다. 17세기 활을 본뜬 활로, 현대 활보다 길이가 짧고 활털이 적게 들어가 무게가 가볍다. 박수현이 가진 현대 활은 60g쯤, 바로크 활은 30g쯤이란다.
연주자들은 바로크 활을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바흐, 하이든,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초기 곡을 연주할 때 사용한다. 당시의 음색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조형준은 “현대 활은 활의 어떤 부분에서도 균질한 소리가 난다”며 “바로크 활은 활대가 둥근 모양이라 활의 양끝에서는 가벼운 소리가, 가운데에선 짙은 소리가 난다”고 설명했다.
활의 중요성에 대한 박수현의 이야기. “악기가 타고난 목소리라면 활은 구강이나 혀와 같아요. 아무리 성대가 좋아도 입 안 공간이 편안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빛을 보지 못하잖아요. 좋은 악기가 있으면 큰 콘서트홀을 채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연주자의 작은 취향까지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는 활이에요.”
악기처럼, 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제작된 지 100년 넘은 장인들의 ‘올드 활’은 1억원을 넘어선다. 박수현은 피에르 시몬(1808~1881)이 만든 1860년 산 활을 후원 받아 사용하고 있다. 활을 ‘혹사’시키는, 현대 곡을 연주할 때는 고가의 활을 꺼내지 않는다. 박수현은 “활털 대신 활대를 사용해 현을 긋거나 튀기며 연주하는 테크닉을 쓰는 곡은 이름 없는 저렴한 활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장인들이 만든 활의 가격은 100만원대부터 시작해 1,0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유명 연주자가 특정 브랜드 활을 쓰면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올라간다.
활털은 말총으로 만든다. 활털은 소모품이다. 빠르고 거친 곡을 많이 연주할 수록 활털을 자주 갈아야 한다. 큰 공연을 앞둔 연주자는 일주일 전쯤 활털을 새로 교체해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 둔다.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 날을 미리 바꿔 시간을 두고 길들인 것과 마찬가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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