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리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 노출 강한 산타 복장을 한 여성들이 클럽 계단으로 줄지어 내려왔다. 승리는 여성들을 병풍처럼 두른 채 쇼의 화룡점정인 양 나타났다. 파티 사진은 2016년 12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웃음거리로 다뤄졌다.
#2. 정준영은 ‘황금폰’이라 불리는 카카오톡 전용 휴대폰을 갖고 있다. “포켓몬 도감처럼 수많은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고 친한 가수가 2016년 1월 ‘라디오스타’에서 장난처럼 폭로했다. 정준영은 그 가수도 자기 집에 오면 황금폰을 찾는다고 맞불을 놨다. 황금폰은 정준영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촬영 및 유포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로 여겨진다.
빅뱅의 멤버 승리가 클럽 버닝썬 투자 유치를 위해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으로 입건되고, 가수 정준영이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촬영하고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유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과거 두 사람이 예능프로그램들에서 웃음 소재로 삼았던 발언들이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불법을 희화화했다. 결과적으로 승리와 정준영의 일탈 행위를 미화 또는 방조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승리와 정준영의 도덕 불감증을 부추긴 방송의 문제점을 되짚어봤다.
김표향 기자(김)= “승리ㆍ정준영 사건으로 과거 이들이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들이 도마에 올랐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들이었다. 제작진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송에 내보냈고, 시청자는 웃고 즐겼다. 우리 모두가 여성을 유희거리로 여기는 풍토에 길들여져 있었던 거다.”
양승준 기자(양)= “‘라디오스타’에서 승리가 여성들에 둘러싸인 클럽 파티 사진에 진행자들은 ‘진정한 셀러브리티’라고 호응했다. 여성을 전리품 혹은 장식물로 여기는 남성들의 폭력적이고 자기과시적인 시선이 느껴져 당시에도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빗댄 ‘승츠비’라는 별명을 무슨 훈장처럼 다뤘다. 승리가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포장된 데는 방송의 책임이 크다. 결국 방송이 버닝썬을 홍보하고 투자 유치를 도운 셈 아닌가.”
강진구 기자(강)= “SBS ‘미운 우리 새끼’와 MBC ‘나 혼자 산다’도 승리의 재력과 초호화 클럽 파티 등을 소재로 다뤘다.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승리는 동경의 대상으로만 묘사됐다. 승리가 사적으로 돈을 어떻게, 어디에, 얼마나 쓰든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방송 소재로 다룰 때는 신중했어야 한다. 일탈 행위까지 미화되고 말았다.”
양= “방송이 죄의식을 희석시켜 준 거다. 죄의식 부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정준영의 황금폰과 승리의 클럽 사업 등 방송에서 언급한 일들이 범죄 행위의 일부로 드러났다. 범죄인 줄도 모르고 웃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해진다.”
강= “남성 연예인들이 스스럼없이 ‘야동’(야한 동영상) 얘기를 하는 것도 문제다. 야동으로 욕구 해소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야동 시청을 건강한 취미인 양 과시한다. 심지어 야동 얘기를 ‘소신발언’이라고도 하더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포르노 소비 문화, 성 착취를 공유하는 견고한 남성 연대가 방송에서 성 의식 왜곡으로 나타난 거다. 불법촬영 및 유포가 비단 연예계만의 문제일까. 대학생 단톡방에서 벌어진 성희롱 문제는 과연 이번 사태와 본질적으로 다를까.”
김= “JTBC ‘아는 형님’에서 그룹 아이콘 멤버들이 승리의 외장하드에서 야동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하자 한 출연자는 ‘그건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 아니겠냐’면서 시시덕거렸다. 야동이 어떻게 선물인가. 야동 대부분은 불법이다. 그리고 그 본질은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성적 도구화다.”
양= “반대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우리 사회가 성 문제와 관련해 남성에게만 관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MBC ‘진짜 사나이’ 여군 편에서 여성 연예인들이 훈련 조교인 남성 하사의 외모에 호감을 드러내며 특정 신체 부위를 ‘성났다’는 식으로 묘사했을 때 ‘성희롱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희화화했던 제작진은 ‘편집 부주의’라며 사과도 했다. 남성이 유희 대상이 됐을 때만 유독 문제가 된다.”
김= “과거 연예계에서 성관계 영상이 유출됐을 때 방송에서 퇴출된 건 피해자인 여성 연예인이었다. 시대가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다.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인 것을 보고 경악했다.”
양= “방송이 도덕 불감증을 조장하고 부추긴 측면이 있다. 이면에는 시청률 지상주의가 있다. 미국만 해도 접근권이 제한된 유료 케이블 채널에선 막장 토크쇼가 방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지상파와 케이블이 경계 없이 한정된 시장을 놓고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 스타성과 선정성에 기댄다. KBS ‘1박2일’이 3년 전 성관계 불법촬영 혐의가 있던 정준영을 3개월 만에 재투입할 때, 정준영을 등산에 나서게 하고서는 고행을 겪은 것처럼 묘사해 면죄부를 줬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해도 그가 무고하게 핍박받은 건 아니지 않나. 공적인 책무를 저버린 방송사도 이번 사건의 방조자라고 본다.”
강= “YG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넷플릭스 예능콘텐츠 ‘YG전자’가 마약과 몸캠(신체 촬영)을 콩트 소재로 다룬 것도 마찬가지다. YG에 대해선 특히 관대했다고 본다. 문제가 거듭되면 가중처벌하듯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데 YG에서 잇따르는 마약 문제에는 ‘원래 그런 집단’이라는 식으로 치부하고 ‘약국’이라며 희화화해 버렸다.”
김= “토크쇼는 사전 인터뷰를 통해 주제를 선정하고 대본을 쓴다. 생방송도 아니고 의지만 있다면 문제성 발언을 충분히 거를 수 있다. 돌출 발언은 사후 편집하면 된다. 제작진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출연자들의 인성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할 수 있지 않나. 성평등 감수성에 기반해 제작 가이드를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강= “‘국민 역적’으로 스스로 자신을 격상시킨 승리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 언론이 괴물을 만든 것 아닌가 싶어 섬뜩했다. 감시, 비판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예능이라는 이유로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다.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양승준 기자ㆍ김표향 기자ㆍ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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