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연재를 통해 격차의 생성ㆍ확대 관련 일곱 이슈, 장기 방치 및 축소ㆍ해소의 배경, 양국의 무사와 선비 각 7인(혹은 집단)에 대해 살펴보았다. 최종회에선 핵심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Q 연재물을 일관하는 키워드와 사관(史觀)은?
A 이슈별 논의에 쓰인 백성(혹은 국민, 민중)의 눈높이ㆍ실격의 역사ㆍ역사의 품격이 키워드이며, 이와 유관 개념을 활용하여 역사 이해를 시도하는 이른바 ‘품격사관’으로 양국사의 내막을 비교 고찰한다. 리더나 조정(朝廷)의 시책과 대응이 백성의 편익보다 기득권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형태로 접근하다 역사의 암전이나 퇴보로 이어지면 이를 실격의 역사로 규정하고, 이런 류의 역사 전개를 최소화해야 역사의 품격이 높아진다고 해석한다. 한일 격차를 키운 일련의 정치와 정책은 다양한 암전 국면을 거쳐 최종적으로 국권 피탈이라는 한국사의 대 퇴보로 이어지기에 실격의 역사로 분류될 수 있다(역사의 품격 2017, 31~36쪽).
품격사관에 따르면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박근혜 정권에서 행해진 국정농단 등 정치ㆍ인사의 퇴행을 시민의 힘으로 바로잡은 기념비적 사건이자 한국사의 품격을 크게 높여준 역사의 큰 전환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파란만장한 사건과 수난으로 점철된 우리의 근대사는 ‘한민족사의 대실격기’로, 사상 최대 영토를 자랑하던 대일본제국의 패망과 점령군에의 피지배는 ‘2천년 일본사의 대실격’으로 표현할 수 있다.
Q 일곱 이슈 중 핵심은?
A (1)과 (8)에서 다룬 리더층의 편협한 세계관과 약한 포용성, 리더를 포함한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지도자들은 임진ㆍ정유전쟁, 정묘ㆍ병자전쟁에도 불구하고 국체가 유지되자 유학 이념 중시 체제의 안정성을 과신한다. 무역과 인적 교류, 서구 학문과 서적에의 접근을 금지하는 쇄국 조치의 장기화로 지배층까지가 신 지식과 정보 분야에서 까막눈이 된다. 여기에 위기의식과 지적 호기심을 가진 지식인층의 활동 마저 대폭 제약되면서 나라 밖 정세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여 국익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개혁은 미뤄지고 약해진 주인의식과 성취동기에 따른 폐해는 축적된다. 어렵게 착수한 개혁도 선두에서 지휘하며 독려하는 ‘얼굴이 보이는 개혁가’의 부재로 성과가 약했다.
유학 이념을 숭상한 조선 지배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 인색했던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이들은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말로는 ‘하늘이 내린 같은 백성’이라면서도 백성친화적인 정책의 시행을 주저한 대신 특권적 신분제에 안주하여 지위와 권한을 누린다. 또 스스로의 입맛에 맞는 유학 이념만을 발췌하여 통치 이념으로 내걸고 입으로 ‘천하위공’을 외우면서 실천을 외면한다. 권력이 분산되기 보다 왕의 측근 등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지배층 전반의 윤리 의식도 약해진다.
Q 격차의 축소ㆍ해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근본적인 변화는?
A (10)에서 다뤘듯이 세상이 바뀌어 이전과 달리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되자 상실되거나 약화되었던 주인의식과 성취동기가 되살아나는 등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가 재조직되고 잠재 능력이 계발된 점이다. 이러한 우리 내부 변화의 이면에는 20세기 전반의 수난기를 거치면서 지주 등 기득권층의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미국식 민주주의 정치가 이식된 사실이 있다. 그 결과 또래들이 비슷한 출발선에서 인생 경쟁에 나서고 유학 이념 중시 체제의 유물이자 구속복같은 신분제 제약을 벗어난 자유 시민 계층이 활약한다. 때 맞춰 우리 안에서 리더 박정희, 각료 장기영ㆍ남덕우, 기업가 정주영ㆍ이병철ㆍ박태준ㆍ유일한, 산업 일꾼 전태일ㆍ김경숙과 수많은 이름없는 별들이 배출된다. 그 연장선에서 유력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있는 상품을 제조, 수출하여 경제를 성장시킨다.
Q 격차 극복과 관련해 남은 과제는?
A (10)에서 언급했듯이 추격 후 추월까지 넘보려면 양적 이슈에서 꾸준한 도전으로 격차를 줄이고, 치밀하고 인내심있는 접근으로 축소ㆍ해소가 더딘 질적 이슈에서의 격차 완화에 나서는 것이다. 최고 리더를 위시한 각 분야 지도자들의 의식 전환, 관-민ㆍ관-관ㆍ민-민 간의 질서와 관행의 재정비를 통한 배려와 소통의 증진과 안심되고 안전한 사회의 구축이다.
Q 이번 연재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A 격차가 확인된 세종대 이후 리더들의 닫힌 세계관과 지배층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본 실상의 지속적인 파악과 이에 입각한 적기의 자체 변혁이 없어 대일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다. 역사의 대전환기에는 흐트러진 나라를 재조직할 내부 역량이 달려 우왕좌왕하다 국권까지 빼앗긴다. 이같은 역사의 대실격 장면의 재발을 막으려면 내발적인 자기재조직력을 키워 외부 충격 없이도 구각을 깨고 새 시대와 나라를 열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선결과제는 열린 세계관과 포용성을 지닌 인재가 리더로 클 수 있는 정치·인사 풍토의 구축과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관례화다.
배준호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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